본문 바로가기
엔터테인먼트

장자연씨의 자살과 우려들

by 박평 2009. 3. 7.


꽃보다 남자에 출연했던 장자연 씨가 자살을 하셨다.

이제는 연예인의 자살 사건이 그렇게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위로를 던져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고인의 넋이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랄뿐이다.

나는 이 일이 또 하나의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올까봐 그것이 두렵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시청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분이 자살하신 것이기에

더욱 걱정이 된다.

요즘 아이들 가뜩이나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데, 행여 이번 일로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이 갈까봐

그것이 걱정이 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 최진실씨가 자살했었을 때 썼던 글을 다시한 번 포스팅 하고자 한다.

부디 조금 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랄 뿐이다.

----------------------------------------------------------------------------------------------------------

최진실씨가 자살했다.

다들 아쉬워 하고, 마음 아파하고, 충격받아 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베르테르효과? 자살바이러스?

그 이름이 어떻든 간에 사람들은 흔들리고 있다.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감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왜 죽으려 드는가?

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들이 늘어가는가?

왜 그럴까?

 

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적 있습니까?'

 

사람들은 죽음을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한다.

단절, 고통의 끝.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도대체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죽음 이후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판단하는 걸까?

만약 진짜 지옥이라는 데가 있어서 자살 후에 지옥불에 빠져서 미친듯이 고통 당한다면?

그것도 몇 만년 동안?

그게 확실하다면 과연 죽으려 할까?

만약 죽어버린다면 특히 자살을 해서 죽는다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평생 둥둥 떠다녀야만 한다면?

그렇다고 해도 죽으려 할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나 쉽게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

모험심이 강한 걸까?

근데 그렇다면 살아도 상관없지 않나?

왜냐면 삶 또한 내일을 알 수 없는 거니까.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뭐 지속적으로 힘들고 괴롭고 못 살겠다고? 그러니까 죽는게 나은것 같다고?

하긴 그렇다면 죽는게 나을 수도 있겠지.

 

이제 과학적인 얘기를 해보자.

과연 사람들은 왜 죽으려 할까?

당연히 죽는게 더 낫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난 그보다 더 큰게 있다고 본다.

바로 '공명'이다.

 

죽음은 단순한 결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욕구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존재해야 한다.

기본욕구를 거부할 만큼 강한 원인, 그 계기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공명'에서 찾는다.

 

두곳을 연결하고 있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제작된 큰 다리가

마치 고무줄처럼 휘면서 출렁거리다가 무너지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공명'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가지고 있는 진동이 계곡 사이의 바람과 '공명'하면서

다리를 휘게끔 만드는 커다란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공명은 라디오에서도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낸 작은 전파를 라디오는 그와 똑같은 전파를 내보면서 공명시키고

그에 따라 우리는 작은 전파를 가지고 음악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과거 이은주라는 배우가 죽을 때,

그녀의 가슴에 '주홍글씨'라는 영화가 공명을 일으킨 것이라고 봤다.

그녀의 기분과 주홍글씨라는 영화가 묘한 공명을 일으켜 버린 것이다.

 

나는 이번 최진실 자살로 인하여 모방자살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공명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최진실의 자살이 불러온 묘한 진동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진동과

'공명'하여 부정적인 면만 급속도록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공명으로 커진 부정적인 면이 자살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스로 전파를 바꾸면 된다.

라디오의 전파를 바꾸면 다른 음악이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전파를 바꿔야 한다.

 

좋은 기분을 주는 전파로 바꿔야 하고,

행복한 기분을 주는 전파로 바꿔야 한다.

그러면 그런 기분과 공명을 일으켜 사람은 행복하게 될 수밖에 없다.

 

자살? 당연히 안하게 된다.

 

이게 쉬운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죽음은 인간에게 예정된 일인데,

그 예정된 일을 서둘러 하느니 차라리 조금 더 노력해서 이왕 살 인생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사는게 맞는 거 아닐까?

 

그러니 자기의 전파를 바꿔라.

아무리 해도 우울한 기분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면

뭐든지 찾아서 해봐라.

게임을 해보고, 노래를 불러보고, 달려보고

친구를 만나보고, 최고로 재밌다는 드라마를 감상하고

영화를 봐보고, 미친듯이 먹어보고, 책을 읽어보고 뭐든지 해봐라.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때면,

지금 자기가 우울하다는 주파수를 뽑아내며 세상의 우울한 생각들과

공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라.

지금 자신이 우울한 생각들을 다 불러 들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라.

상황이 안좋은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나쁜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분명하게 인식해라. 세상의 잘못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문제는 우울해 하고 있는 당신이다.

 

우울한데 그럼 어떡해? 라고 생각한다면 웃어라.

미친듯이 소리내서 웃어라.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혼자 웃어라.

큰 소리내서 배가 아플때까지.

눈물날 때까지.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의심이 들어도 웃어라.

그래도 힘들고 괴롭다면 친구 한명에게 부탁해라.

웃고 싶으니까 아무것도 하지말고 같이 웃자고.

노래방에 들어가서 노래 부르지 말고 같이 웃기 시작해라

그냥 막 웃어라.

어색해도 웃어라.

둘이 웃으면 공명이 빨리 일어나 좋은 기운이 더 빨리 반응할 것이다.

 

고작 이거다.

더 행복해 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친구 한명 불러서 미친듯이 같이 웃어 제끼는 것.

자신의 아이가 죽어서 힘들어도,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힘들어도

연인과 헤어져서 힘들어도, 일터에서 쫓겨나서 슬퍼도

장애를 갖게 되어 괴로워도, 빚 더미에 쌓여 미치겠어도,

친구 한명 불러서 웃는건 할 수 있다.

 

주변이 당신을 우울한 기분에 공명 시키려 해도

절대 받아 들이지 말라.

당신은 즐거울 권리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죽기 위해서 약을 먹고, 목을 맬 자신이 있다면,

그정도 결심이 있다면,

사람 불러 놓고 웃는 거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

제발... 살아라.

제발. 세상은 엿같고 좆같아도, 살아야 제맛이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