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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천호진 - 이분은 중년 배우 십니다. (2005년 글)

by 박평 2009. 3. 7.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하죠. 맨 처음 이 페이퍼를 했을 때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배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써 내려 가고 있었죠. 문근영과 강혜정 양은 나름의 관심이 많아서 조회수가 좀 많았구요. 나머지 배우들은 그냥 그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강동원'에 대해서 썼는데 난리가 나더군요. 허걱!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연 씨를 같은 날 '너는 내 운명'을 보고 썼는데, 역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때 느낀거죠.

 

'흥행을 위해서라면 대중의 관심이 많은 배우로 글을 써라!'

 

그렇다면 다음은 장동건? 아니면 결혼하는 심은하에 대한 반추? 뭐 여러가지 생각을 쭉 했습니다만... ㅎㅎ 역시 여긴 제가 좋아하고 쓰고 싶은 배우에 대해 쓰는 공간이니까요. 그냥 쓰고 싶은 사람을 쓰자! 이렇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장동건씨는 나중에 태풍개봉할때 써볼까 하고 있어요. ㅋㅋ)

 

그래서! 결정 내린 것이 '천호진'씨입니다.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뵙고 매우 기분이 좋았거든요.

 

처음에 저는 천호진이라는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농촌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출연하셨기 때문이지요. 그 드라마는 제가 무척이나 안 좋아하던... (어릴때 이런 류의 드라마를 좋아하긴 힘들죠. ;;, 그 당시 10살이었네요.;;) 드라마여서, 거기 나온 배우들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4년 후에 '사랑은 그대 품안에'라는 드라마에서 천호진 씨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천호진이 싫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던 고모왈, '난 좋던데 연기 잘하잖아.'

 

그때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이 촌스런 아저씨가 연기를 잘한다고? 정말로? 음... 별로인데.. 진짜 아닌데... 라면서 믿지 않으려 했죠.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저는 영화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천호진이라는 연기자에 대해선 크게 기억하고 있지 않았죠. 그냥 괜찮은 연기자 정도의 인식만 있었습니다. 주무대가 드라마였기 때문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이 분을 영화에서 만나게 된것은 이중간첩 때 였습니다.

  

한석규의 복귀작으로 기대가 많았죠. 문제는 잘 기억이 안납니다. 분명 나오셨었는데, 연기는 기억이 나는데 정확하게 어떤 배역인지 기억이 잘 안나는 겁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역시 훌륭한 연기를 보여 줬다는 것이죠.

 

배역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이 분은 이중간첩 한석규에게 마치 친형과 같은 친구면서 동시에 그를 이용해(?)먹는 선과 악이 교묘하게 결부된 역할을 연기하셨는데, 그 감정변화와 표정연기는 정말 기억에 팍팍 남습니다.

 

그러다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 권상우의 아버지로 나오셔서 짧지만 인상깊은 아버지 상을 보여 주셨지요.

 

중요한 건 바로 2004년 작품, '범죄의 재구성'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범인을 쫒는 '형사'로 나와서 연기를 합니다. 이 작품에서 그가 연기하는 형사는 역대 어떤 형사 역보다도 잘 매치가 됩니다. '공공의 적'에서 '설경구'도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김상경'도 '투캅스'의 '안성기, 박중훈'도 만들어 내지 못한 그만의 형사 역할입니다.

 

여기서의 그는 '염정아'에겐 '사기나 치고 다니는 시껍한 년'으로 접근하고, '박신양'에겐 '작가선생'으로 접근합니다.

 

이 이중적인 모습은 단순히 시나리오 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러한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은 배우의 연기였습니다.

 

특히 그가 둘을 대할때 눈 빛을 변화 시키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이건 내공으로 밖에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몇개의 작품들을 지나 '주먹이 운다'에서 그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방황하는 '최민식'의 친구로서 말이죠. 이 영화에서 '천호진'은 조용히 최민식을 보듬어 줍니다. 크게 말하지도 않고 크게 외치지도 않습니다. 항상 조용히...

 

그리고는 '최민식'이 술취해 행패를 부릴 때, 딱한번 힘을 내 보입니다.

 

그 딱한번의 강한 연기가 굉장히 가슴에 남았던 이유는 극중 내내 '최민식'을 바라보았던 그의 눈입니다. 그 영화에서 그는 '과거에 무언가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을 법한 사람'을 연기했는데, 그의 눈빛, 그리고 그의 눈가에 잡혀있는 주름은 그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영화가 끝난후 '최민식, 류승범'보다 '천호진'이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로 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천호진씨의 얼굴에는 연륜이 서려 있습니다. 고난한 일생을 뚫고 살아온 것 같은 그 눈빛과 주름.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는 형사연기에는 형사의 생이 느껴지고, 우동집 주인의 연기에서는 사연을 간직한 우동집 주인의 생이 느껴집니다.

 

그의 눈빛은 진지하고 생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게 그가 가진 연기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는 최민식이 보이는 눈빛과는 또 다른 겁니다. 그의 눈빛은 생을 분출시키지만 천호진의 눈빛은 생을 끌어안습니다.)

 

혈의 누에서도 짧지만 좋은 연기를 보여준 그는 '내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로 돌아옵니다.

 

자 여기서 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읽기 싫으신 분은 읽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줄로 구분을 할테니 그 부분을 넘어가서 마저 읽으시면 됩니당.

 

 

 


 내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그는 동성연애자로 나옵니다. 동성연애자라는 것은 쉽지 않은 연기입니다. 물론 영화안에서 그것을 부각시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용했던 남성가정부에게 '너마저 나에게 이러면 안돼.'라면서 절규하는(그러면서도 안으로 삭히는) 그의 연기는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몇몇의 사람들은 피식거립니다. 중년의 남성과 약간 여성적인 젊은 남성가정부의 관계를 아직 우리는 쉽게 납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어색함 때문에 터진 웃음이었겠지요.

 

하지만 누가 동성연애자인 중년 남성의 연기를 그만큼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였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우리가 알수는 없지만 수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의 눈빛이었기 때문에 그 배역에서 우리는 좀더 사람의 냄새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영화자체가 짧은 시간안에 성격을 부여해야 하는 옴니버스 식이라 천호진씨의 연기가 다소 과장되어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다른 연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옴니버스 영화에 따른 설정이겠지요.

 

어쨌든 여기서 그가 가진 연기력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 부터는 다시 읽으셔도 됩니당.

 

천호진씨는 우리나라에 있는 아주 많은 중년 배우중에 하나입니다. 비록 주연 배우는 아직 아니지만, 영화를 든든하게 받춰주는 믿음직한 배우로서 출연시간에 비해 몇배나 더 많은 여운을 주는 그런 배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류승범 같은 배우가 화면에서 아무리 난리를 쳐도 삶의 무게를 보여줄 수는 없겠죠. 그에 반해 천호진씨는 단 1분을 나오더라도 그가 살아온 일생의 무게를 느끼게 해줍니다. 이런 것이 바로 중년배우의 소중함이고 천호진씨 같은 배우가 필요한 이유겠지요.

 

마지막으로 저는 중년의 남성배우들이 당당하게 액션영화의 주인공으로서 혹은 멜로 영화의 중인공으로서 활약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합니다. 그때가 되면 '천호진'씨는 분명 주연급이겠지요. 액션영화든 맬로 영화든 말입니다. 그때까지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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