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엔터테인먼트

배우는 배우다. 이준은 배우다.

by 박평 2013. 10. 25.




아이돌 연기자에 대한 불편한 인식, 혹은 아이돌 연기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거부 반응. 그런 것들은 분명히 대중 안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대중문화의 적극적인 소비자인 젊은 세대에게 '아이돌 연기자'는 누군가에게는 우리 오빠의 또 하나의 비즈니스이자 누군가에게는 작품을 망치는 원흉일 것이다.


아이돌 연기자들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아이돌들이 보여주고 있는 연기는 아이돌이라서 까기에는 그 수준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연륜 있는 배우들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칠지라도 작품 안에서 충분히 빛을 발하고 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연기로 인정받은 아이돌들에 대해서는 대중 또한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탑'이 연기하는 것을 두고 무작정 아이돌이라서 욕하는 이들은 없고, '유이' 또한 마찬가지다. '박유천'은 이제 드라마에서 주연을 맞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되었다. 아이돌이지만 자신의 역할을 잘해낸 이들에게 대중은 정당한 인정을 보내고 있다. 결국, 아이돌 연기자에 대한 비난은 '연기를 못하는 데도 아이돌이라는 바탕을 배경으로 쉽게 배역을 따내고선 연기를 못해 작품에 폐를 끼치는 아이돌'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임창정이 연기한다고, 노래한다고 까지 못했던 것은 그가 연기고 노래고 다 최고였기 때문이다. 잘하면 욕먹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준'은 아이돌이라는 이름표를 제외하고 그냥 '배우'로서 인정받기 충분해 보인다. 그는 <배우는 배우다>라는 작품에서 배우 '오영'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고, 꽤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극의 중심에 서서 원탑으로 극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이 꽤 괜찮은 배우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첫 부분인 연극 공연 장면에서 자신의 연기에 몰입한 이준은 칼을 꺼낸다. 극 중 상대역인 소이는 이에 놀라고, 무대가 끝난 후 소이는 울면서 자신이 아이돌 출신이라서 그런 거냐며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에서 이준에게 씌워진 아이돌이라는 굴레가 사라진다. 아이돌 출신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인지, 아님 이준이 캐스팅되고 나서 그 대사를 추가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순간, 영화는 이준에게서 아이돌이라는 포장지를 벗겨 내 준다.


<배우는 배우다>는 배우인 '오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스타가 되고, 다시 배우로 돌아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영'이라는 배우에 집중한다. 영화가 '배우'의 이야기를 그리기 때문에, 이준은 '배우인 오영'을 연기하는 동시에 극 중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 오영'의 역할도 함께 연기해야 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이준은 살려낸다. 이준이 영화촬영 장면에서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 나오는 순간, 그리고 대사가 구닥다리라서 못 해먹겠다고 말하는 순간, 어색한 연기는 '오영'의 연기가 되고, '오영'은 그냥 '이준'이 된다. 덕분에 이 영화 안에서 이준은 너무나 연기를 잘하고 있지만, 그것이 진짜 이준의 모습인 건지 '오영'을 제대로 연기하고 있는 건지 혼동이 될 정도다. 


영화 안에서 '오영'은 배우이지만, 극 중의 다른 배우들과는 다른 동떨어진 존재여야 했다. 배우이지만 가장 배우 같지 않은 인물이어야, 배우에서 스타로 스타에서 다시 배우로 돌아올 때, 진짜 배우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영의 주변에 있는 배우들은 오영과는 다르다. 오영은 스타이고 배우지만 동떨어져 있고, 이 세계와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오영이 속해 있던 곳은 '배우'들의 공간이 아니라 '스타'들의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배우'에 모든 것을 건  이 남자가 처음으로 여배우랑 섹스하고 나서 한 말이 '여배우도 별거 없다'는 말이었을지 모른다. 그 말은 다시 해석하면 '스타도 별거 없네'라는 말과 일맥상통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준'의 캐스팅은 완벽해 보인다. 아이돌, 배우와는 거리가 먼, 하지만 스타. 그런데 이런 인물이 '배우'로 분했을 때, 거기에서 느껴질 이질감은 확실히 '배우는 배우다'에서 가장 중요한 풍미를 만들어 낸다. 어째서 김기덕 감독이 그를 캐스팅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이준은 '스타'지만 스타가 아닌 듯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돌이고, 아이돌이라고 하기엔 기존의 아이돌들과 너무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질감이 결국 영화 안에서 제대로 살아난다. 덕분에 오영은 이준이고, 이준은 오영이 되며, 이 작품 안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이준이 과연 다른 작품에서도 이만큼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만약 이준이 오영과 같다면, 다른 영화에 가서도 그는 뭔가 동떨어지고 혼자 '튀는' 그런 연기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올바른 연기였지만, 연기의 합이 중요한 작품에서는 작품 전체의 톤을 중구난방으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재밌는 것은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결국 '이준'이 연기를 잘해서 이준과 오영을 동일 인물인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짧게 등장했던 <닌자어쌔씬>과 <배우는 배우다>라는 영화 두 편으로 이준의 연기력, 혹은 이준의 커리어를 쉽게 평가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섣부른 짓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배우는 배우다>에서 이준은 오영이었고, 그의 연기는 훌륭했다는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이름표 같은 것은 이미 영화 초반에 사라졌고, 영화 안에는 배우 이준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훌륭하게 영화를 이끌어 나갔다. 함께 하는 기라성 같은 배우들에 전혀 눌리지 않고서 말이다. 덕분에 영화는 설득력을 얻고, 이야기는 풍부해질 수 있었다. 첫 주연작으로 너무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아 완벽히 소화해낸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물론 그가 계속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고 찬성하는 바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