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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삼킨 아이는 <화이>가 아니라 여진구였어.

by 박평 2013. 10. 12.



올해 초 2013년 가장 기대되는 감독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총 5명의 감독을 선정했는데, 그들은 <베를린>의 류승완 감독,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 <감기>의 김성수 감독, <군도>의 윤종빈 감독, <화이>의 장준환 감독이었다. 이 5명의 감독 중에서 특히 '장준환'감독에 대한 기대는 컸다. <지구를 지켜라>가 주었던 그 충격을 생각하면 감독이 만들어 낼 영화에 대한 기대는 어쩌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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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와서 가장 먼저 쓰고 싶었던 것은 영화와 연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배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배우는 바로 '여진구'이다. 


<화이>라는 영화에서 '화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중심이다. 영화에서 화이는 괴물들의 자식이다. 괴물들에 의해 길러진 새끼 괴물이다. 그 새끼 괴물이 자신을 길러준 괴물들을 죽이는 이야기가 <화이>의 기본 스토리다. 그래서 주인공 '화이'는 영화 안에서 그 누구보다 중요한 배역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중요한 배역이 연기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면이 있다. 괴물의 자식은 스스로 괴물이 되기 전에 괴물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괴물들의 손에서 자란 천사가 알고 보니 천사가 아닌 괴물이어야 영화가 가진 폭발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적당히 괴물의 느낌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마저 없다면 너무 뜬금없는 변신으로 인해 몰입이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진구'는 이 지점에서 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여학생과의 접촉을 통해 충분히 순수한 모습을 보이다가, 총을 쏠 때는 순수한 모습에 약간의 악마성을 포함시킨다. 그리고 괴물이 되었을 때는 아직 완전한 괴물이 되지 못한 것처럼 불완전한 광기를 내 뿜으며 포효한다. 이 상황별 연기는 진폭이 크면서도 서로 동떨어지지 않고 자연스레 연결된다. 매우 어려운 배역을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다. 


1997년생인 여진구의 연기가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더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작품 안에서 매우 선이 굵은 연기를 펼치는 데 있다. 이제 17살인 배우의 연기를 '선이 굵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의 연기는 굵다. 표정도 굵고, 감정 처리도 굵다. 심지어는 목소리도 굵다. 그래서 그가 만드는 분위기는 누와르의 향기를 풍기는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강렬해지며, 다른 어린 배우들이 주로 보여준 것처럼 세련되거나 날카롭거나 하기보다는, 묵직하고 강력한 울림을 주는 한방을 만들어 낸다. 덕분에 '화이'의 각성은 단지 '광기'의 발휘가 아니라 진짜 '괴물'이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화이>는 상당히 무거운 영화다. 이 무거운 영화의 분위기를 중심이 된 17살 배우가 더욱 밑으로 깔아뭉갠다. 덕분에 <화이>는 자신이 가진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더욱 진한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이 배역을 할 수 있는 다른 어린 배우를 떠올려 보려 해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화이'를 연기한 여진구는 확실하게 '괴물'을 삼켰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연기하면 '괴물'이라는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영화 안에서 그는 괴물이 되어 있었고, 그 연기를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화이>는 확실히 여진구의 영화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나이에 상관없이 충무로에서 선 굵은 연기자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날 배우가 바로 '여진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그는 그 나이가 지니기 힘든 자기만의 무기를 확실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덧말) 장준환 감독의 <지구는 지켜라>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단언컨대 '화이'는 '괴물'이다. '괴물'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또 다른 외계인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끝에 여진구가 '괴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아주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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