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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식상한 기억상실, 너목들도 덫에 빠지나?

by 박평 2013. 7. 4.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클리셰라는 것은 때로는 양날의 검과 같다. 클리셰를 완전히 버린다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작품을 클리셰로 가득 채운다면 '새로운 시도'가 없는 죽은 창작이나 다름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드라마에도 이러한 클리셰들이 포진하고 있다. 당연한 출생의 비밀이 있고, 재벌이나 혹은 능력 좋으면서 여자 주인공에게 헌신하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도 클리셰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장르의 드라마든지 '로맨스'가 빠지면 안된다는 것도 넓은 의미의 클리셰일 것이다. 그리고 '기억상실' 또한 너무나 자주 사용된 클리셰의 하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러한 클리셰들을 교묘하게 비트는 것으로 찬사를 받을만한 작품이었다. 출생의 비밀도 있고, 능력 좋으면서 헌신하는 남자 주인공도 있다. 이 뻔하디 뻔한 설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뻔한 클리셰들을 가지고 장르적인 비틀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메디인 것 같다가도, 법정 드라마로 탈 바꿈 하고, 다시 스릴러로 변한다. 한 회차 안에서 일어나는 이 다양한 장르적 변주는 클리셰가 가지고 있는 진부함을 오히려 강한 '반전'으로 변화시켜 버린다. 뻔한 드라마의 장치를 뻔하지 않게 사용하므로서 얻어지는 반대급부적인 충격이야 말로 '너목들'이 가진 진정한 재미였던 것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9회에서 또 하나의 기막힌 클리셰가 등장했다. '기억상실'이다. 하나의 작품 안에서 정말 다양한 클리셰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이렇게 까지 클리셰를 등장시키는 작품들은 대중적인 사랑은 얻으나 작품성에 있어서 욕을 먹는 다거나 혹은 아예 망작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다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어떨까? 과연 클리셰의 덫에 빠져서 앞의 호평을 결국 '뻔한 드라마'라는 혹평으로 바꿀 것인가?


물론 이미 질문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밝혔다시피 '너목들'은 이 진부한 설정들을 영리하게 사용해 왔다. 이 전례를 생각해 보면 마땅히 수하의 기억상실은 또 하나의 반전 장치로 사용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함으로서 드라마의 재미를 극대화 시키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기억상실이라는 진부한 설정이 드라마를 망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바로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소통'이라는 화두와 연관되어 있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초반 수하는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수하는 장혜성의 마음을 읽어 주었다. 9화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수하는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없게 되었고, 더불어 기억까지 잃은 상태다. 이제 장혜성은 수하의 마음을 넘어 그의 기억까지도 읽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혜성이 수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수하가 기억을 잃는 설정은 작품을 쉽게 써 보기 위한 장치가 아닌, 작품에서 꼭 필요한 설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너목들'은 비록 다양한 장르가 혼재 되어 있는 드라마이지만, 그 근본을 잘 살피면 '장혜성'이라는 한 인물의 성장기라는 틀을 담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기존의 클리셰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결국 시청자를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천천히 끌어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시나리오이다.


덕분에 '너목들'은 친근하면서도 새로운 작품으로 종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끝에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평가는 아마도 '진부함을 끌어들인 새로운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과 같은 기조로 작품이 잘 이어졌을 때의 얘기다. 부디 지금의 이 기조를 잃지 않고 끝까지 박수칠만한 드라마가 되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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