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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대놓고 쉬운 영화 <전국노래자랑>의 아쉬움

by 박평 2013. 5. 4.


미국에서 날아 온 <아이언맨3>의 흥행세가 무섭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훌륭히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해 몇 번 더 보고 리뷰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반응도 좋고 흥행세도 무섭고, 차지한 영화관 개수는 더욱 무섭다. 지금은 <아이언맨3>가 천하통일을 이루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아이언맨3>에 대항하는 한국 영화가 있다. <전국노래자랑>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장수 음악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의 실제 이야기들을 소재로 해서 만든 영화다. 화려한 <아이언맨3>에 비해 한 없이 소박한 <전국노래자랑>이 과연 얼마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전국노래자랑>의 많듦새에 대해서는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전국노래자랑>은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마냥 못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영화다. 이런 애매한 스탠스가 오히려 흥행에 역효과를 낼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전국노래자랑>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각 출연자들의 에피소드들이 따로 구성되는 옴니버스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러브액츄얼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옴니버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많은 에피소드들과 많은 배우들이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힘있게 살아 있어야 영화 전부가 살아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옴니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에피소드들의 비중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그리고 비중이 적은 에피소드의 감동을 어떻게 극대화 시킬 것인지와 같이 매우 계산적인 연출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러브액츄얼리>는 그것이 잘 이루어졌기에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전국노래자랑>이 아쉬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각 에피소드들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의 완결성이 너무 약하다. 예를 들어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고자 하는 여시장과 그녀의 출연을 위해 노력하는 맹과장의 이야기에는 특별히 감동을 느낄 부분이 없다. 이것이 어째서 하나의 에피소드로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 둘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 어째서 이들에게 '전국노래자랑'이 큰 의미인지 알 방법이 없다. '카스바의 여인'이 어떤 의미가 있는 노래인지도 나오질 않는다. 여시장은 그저 자기의 홍보를 위해서, 맹과장은 그저 자신의 승진을 위해서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이 어째서 영화 안에 들어갈 에피소드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마지막 장면에서 손녀가 둘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 하지만, 이미 작품에 처음 등장할 때 부터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의 갈등은 이미 풀린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둘은 매우 잘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나중에 안타까움은 그저 아이가 슬픈 얘기 하면서 우니까, 그냥 그 장면에서 보이는 안타까움만 남는다. 


다른 에피소드들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가수가 되고 싶던 봉남과 그런 봉남과 결혼해서 사는게 벅찬 미애 사이에서는 어떠한 화해와 이해도 없고, 영화 끝까지 그냥 평행을 달린다. 마지막에 봉남이가 미애를 위한 노래 한곡 부른다고 해서 그 갈등이 풀어져 버릴리는 없다. 그러나 그냥 그렇게 유야무야 에피소드가 정리 되어 버리고 만다.


사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이야기의 완결성을 띄고 있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표현 방식도 문제다. 글을 잘 쓰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랑한다, 슬프다, 기쁘다'같이 인간의 큰 감정들을 직접 쓰지 않는 것에 있다. '사랑한다'고 쓰기 보다는 사랑을 느끼고 있는 사람의 눈길, 심장소리, 움직임, 떨림, 머뭇거림등을 묘사하는 것이 더욱 감정을 잘 전달 할 수 있는 표현 방식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전국노래자랑>은 그냥 있는 그대로 대놓고 묘사해 버린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그대로 표현이 된다. 캐릭터의 성격 때문에 그게 안되는 '현자커플'의 에피소드에서 '현자'에게 가장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은 직접적인 표현 방식이 가진 약점을 알려준다.


이런 이유들로 <전국노래자랑>은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약점이 너무 많고, 헐거운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무조건 못 만들었다고 말하기가 애매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소소함'의 성격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소소하다. 우리네 일상이 그런 것처럼 소소함이 영화 전반에 묻어 있다. 에피소드들의 구성이 약한 것도, 직접적인 표현 방식이 난무하는 것도, 갈등의 해결이 얼버무려 지는 것도 소박한 우리 일상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모습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전국노래자랑>은 시청층이 높은 방송이다. 이 분들에게는 영화 <전국노래자랑>이 보여주는 모든 이야기들이 쉽게 편하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따지면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자기만의 분명한 미덕을 지니고 있는 영화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 작품을 처음 기획했을 때 부터, '이렇게 가자'라고 계산 된 것이라면, 나는 제작자 이경규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전국노래자랑>이 나쁜 작품이라고는 말할 생각이 없다.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그것이 그것 그대로 장점이 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어렸을 때 난 <전국노래자랑>을 싫어했던 것 같다. 화려하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았고, 옆집에서 봤을 만한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노래하는 모습이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전국노래자랑>을 시청했던 우리 할머니가 계셨다. 그래서 이 영화, 내가 주제넘게 이래저래 말하고 있지만 할머니께 보여드릴 수 있었다면 참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끼리 함께 가서 보기에는 좋은 영화 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이언맨3>와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는 <전국노래자랑>이 그런 화려한 헐리우드 영화가 버거운 분들에게 소박한 즐거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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