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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듀스는 전설이다.

by 박평 2009. 2. 18.

그랬다. 내가 어렸을 적, 그 시기는 가요계에 대단한 지각 변동이 시작됐던 때였다. 지금 입에 올리기엔 신화처럼 되어버린 많은 가수들이 활동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김건모,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노이즈, 룰라, 투투, 듀스.....

이중에서 진실로 신화가 된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인 것 같다. MBC라디오가 대한민국 가요의 역사에 대해서 만든 특집 프로그램에는 '서태지와 아이들'만이 따로 등장했으니 그들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나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팬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하나의 전설이 있었다. 그 이름은 DEUX. 디 이 유 엑스 듀스.


나에게 그들의 노래는 충격이었다. '나를 돌아봐'에서 보여준 현란한 댄스와 엄청난 비트의 랩은 듣고 보는 내내 나를 전율 시켰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이현도의 그루브라는 것을 나는 그 음악에서 처음으로 느꼈으며, 그 느낌은 너무 강렬했다.

2집 타이틀곡 '우리는'을 들었을 때, 난 '나를 돌아봐'와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 안에 있던 가사였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지금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제 우린 앞을 향해서만 나가겠어.'

나는 댄스 음악에 이런 자기 성찰적 가사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때 알았다. 그들은 춤췄고 노래했고, 랩을 읊조렸다. 그것은 하나같이 강한 외침으로 다가왔다.

3집의 '굴레를 벗어나'는 이런 시적 가사가 그대로 등장하면서 좀더 세련된 음악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때당시 이들의 패션을 보고 어떤이는 '이게 뭐야!'라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행했다. 이들의 감각은 이들의 힙합은 음악과 가사와 춤과 패션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이들의 정신은 그렇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2집 앨범명은 DEUXISM이다. 이미 RAINISM 전에 이런 시도가 존재 했다. 개인적으로는 RAINISM보다는 DEXUISM에서 정신적 감흥을 더 느꼈다.

강력한 비트 그루브한 흐름, 빠른 랩과 현란한 댄스로만 여겨질 것 같던 그들의 음악은 영원한 명곡 '여름안에서'와 같은 곡들로 인해 폭을 넓혔고, 그 이외에도 상당히 괜찮은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들이 앨범 곳곳에 숨어 있다.

그 이후 이들은 정규앨범을 내지 않고 사라졌다. 은퇴하였다.

그리고 듀스의 김성재만이 돌아왔다. '말하자면' SBS인기가요 컴백무대 였다. 난 손꼽아 기다렸다. 그의 노래를.

예상과는 다르게 랩 한 줄없는, 노래로만 이루어진 댄스곡. 그리고 눈을 확 띄우는 패션. 난 다시금 열광했다. '김성재'가 돌아왔다. 나는 가끔 김성재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 '김성재'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뉴스에서 그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그가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솔직히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나는 그의 팬이니까. 하지만 일견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그립다. 그의 노래, 그의 춤, 그의 패션이 그립다.

나는 그가 살아있었다면, 듀스가 서태지 못지 않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설이었으니까.



김성재의 죽음이후, 이현도는 DO라는 애칭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곧 인기는 다시 사그라 들었고 특히, 아르헨도사건(병역기피로 아르헨티나 이민간거 아니냐는 팬의 답글로 욕을 씀)이후로 그는 더욱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참 안타깝다. 나에겐 전설과도 같던 DEUX였기 때문에, 내 인생 최초로 가수를 좋아하게 만들어 줬던 이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김성재가 CF를 통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뜨거워 졌다. 광고가 성공하든 않든, 상업적이든 아니든, 다 상관없다. 그저 그를 다시한번 볼 수 있어서, 그리고 우리에겐 듀스라는 전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한번 드러낼 수 있어서 그저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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