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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피에타, 끔찍했던 돈과 폭력의 랑데뷰

by 박평 2012. 9. 10.

과연 돈이 더욱 폭력적일까? 아니면 폭력이 더욱 폭력적일까? 이 질문은 얼핏 보면 말장난 같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었다. 피에타는 돈과 그 돈이 만들어 내는 폭력, 그리고 정화를 다룬 영화다. 이 작품은 김기덕 특유의 색깔은 그대로 묻어나 있지만, 표현은 조금 더 순화 되었고, 구성은 조금 더 단순해 졌다. 그러나 그 안에 심어 놓은 수많은 은유와 직유들은 후반부로 갈 수록 하나의 큰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며 결국은 정화에 도달한다. 


이 영화를 보고 김기덕 영화의 특징이나, 김기덕 영화에 대한 분석을 하고 싶은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그 보다는 돈과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 현재 나와 사회의 모습이 보였고, 결국 이 영화는 현재에 대한 사유와 고민을 하게 끔 나를 이끌었다. 그것이 감독이 원한 것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말이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떼인 돈 받아주는 '이강도'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돈에만 집중하고 돈을 받기 위한 폭력에만 집중한다. 심지어는 여자의 몸에도 큰 관심이 없다. 그는 철저하게 돈에 의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가 행사하는 폭력의 대상은 전부 공구상들이다. 강도는 청계천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졸지에 쫓겨나게 된 청계천 공구상들은 '이강도'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아이러니 한 건 그런 강도도 자신의 위에 있는 사람 앞에서는 쩔쩔 맨다는 것이다. 강도를 고용한 사람은 '돈을 받아 오라고 그랬지 사람들 병신 만들라고'했냐며 강도를 비난하고 폭행한다. 결국 강도는 또 다른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정작 그 피라미드 구조의 제일 위에 있는 인물은 직접 돈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자신을 마치 깨끗한 인물인양 포장한다. 


이강도가 결국 정화되는 장면에서, 그는 차 밑에 들어가 자신을 차에 묶는다. 그 차가 달리는 도로에 피가 칠해진다. 도로는 곧 산업화를 의미하고 그 피는 강도의 피이기도 하지만 그 도로를 만들어 나갔던 우리 모두의 피이기도 하다. 


이강도라는 이름, 청계천, 직접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우두머리, 피 묻은 도로.


이 모든 키워드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렇게 영화는 현실을 비춘다. 강도는 결국 정화되지만, 폭력의 희생양들은 여전히 정화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느껴지는 불쾌한 기분의 근원이었다. 


피에타가 지금 우리네 삶을 반영하고 비판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오랫 동안 있어왔던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고찰일 뿐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쩄든 이 영화를 보고 현실이 생각 난다는 것은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김기덕 영화의 특징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약간은 괴리감이 있는 상황과 인물일 텐데, 피에타는 그 상황이 너무나 현실 같아서, 충분히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마치 예전에 '섬'을 봤을 때 이상의 충격을 주고 있다. 


피에타는 분명 보기 즐거운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영화도 아니다. 때로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 혹은 감독이 전해 주는 다양한 은유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도 충분한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영화가 펼쳐놓은 이야기에 대해서 우리 모두 조금씩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베니스의 수상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가진 그 자체의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돈이 더욱 폭력적일까? 폭력이 더욱 폭력적일까? 적어도 이 영화는 '돈'이 더욱 폭력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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