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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품격? 신들의 품격!

by 박평 2012. 6. 25.

어떤 작품의 성공여부를 파악할 때 살펴보는 것들이 있다. 바로 '연기자, 감독, 작가'다. 사실 이 3가지만 파악해 보면 작품이 성공할지 못할지는 대충 감이 온다. 물론 시청률은 판단이 불가능하다. 시청률은 신이 내리는 것이다. 여기서 성공이란 시청률을 떠나 괜찮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신사의 품격은 성공할 수 밖에 없는 드라마였다. 장동건을 비롯한 최고의 배우들이 모였고, 시크릿가든을 만들어 냈던 최고의 PD와 작가가 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 드라마는 결국 일요일 밤의 최강자인 개그콘서트를 물리치고 시청률 1위에 등극했다. 그리고 이런 인기는 거의 신의 수준에 도달한 '연기자, 감독, 작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 연기의 신들

장동건은 이미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후로 장동건은 항상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친구가 있었고 해안선이 있었고, 태극기 휘날리며가 있었다. 청춘스타에서 연기자로 진화했던 장동건은 신사의 품격에서 자신이 지닌 매력을 쏟아 내고 있다. 김수로는 또 어떤가. 장동건을 앞에 두고도 매력으로는 뒤지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김수로이기 때문이다. 연기는 뭐 말하면 입 아플 뿐이다. 장동건과는 사랑으로 얽히고, 김민종과는 동생으로 얽히는 김수로의 역할은 4명의 남자 주인공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그렇기에 제대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배역인데, 김수로는 이런 역할을 참으로 잘 소화해냈다. 김민종은 여전히 멋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보여줬던 그 매력적인 눈망울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극중에서 메아리가 빠질만 하다. 게다가 가끔 보이는 여성스러운 모습들이나, 깨알 같은 애교를 표현하는 것을 보면, 김민종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대중들은 선도부 이종혁, 추노의 이종혁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종혁이 완전히 무명일 때, 연극무대에서 이종혁의 게이스러운 연기를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이종혁의 이 능청스러운 바람둥이 역할이 새롭다기 보다는 반갑다. 그가 정말 잘하는 역할을 맡아 제대로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원래 이종혁은 이런 연기에 탁월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중에게 그런 연기를 보여줄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여자는 어떤가? 한국에서 김하늘 만큼 남자 배우를 돋보이게 연기 하는 여배우는 드물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김하늘은 상대 남자 배우를 정말이지 완벽할 정도로 받춰준다. 김하늘의 약간 과장되어 보이는 연기는 단편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초반의 김도진을 풍성하게 해줬고, 이후에는 연기 톤을 살짝 차분하게 바꾸면서, 김도진의 연기를 깊게 만들어 줬다. 완급조절도 훌륭하고 세밀한 표현도 탁월하다. 그러니 로코퀸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윤진이는 신인인데 빵 떴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신인이 이정도면 찬사 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얄미울 수 있는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바꾸는데는 그녀의 풍성한 얼굴 표현이 제대로 한 몫했다. 입도 크게 잘 벌리고 얼굴 표정도 잘 만든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다. 김정난씨는 감히 평가할 수가 없다. '뜨거운거 말고 따뜻한거'를 바란다고 할 때, 감은 눈을 통해서 감정을 전달 시키는데, 정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커플의 비중을 늘려달라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 캐릭터를 얼마나 잘 소화해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윤세아는 골프하는 것만 봐도 이미 훌륭하다. 촬영전 골프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고 하는데 누가봐도 딱 홍프로다. 아주 미울 수 있는 역인데도 그렇지 않은 것은 대본의 덕도 있지만 그녀가 홍세라를 참 매력있게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배우들을 이렇게 간단하게 살펴보는 것은 죄다. 시간이 나는 대로 배우들에 대해서 한명 한명 분석을 하는 것이 옳다. 이들은 그 정도로 잘한다. 연기를 잘하니 보면서 감정이 이입되고, 더욱 더 드라마에 빠져들게 된다. 만약 이들의 연기가 없었다면 이 작품, 꽤 허영심 넘치는 작품으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 현실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바로 이 연기자들 덕분이다. 연기들 정말 잘한다. 


- 연출의 신

로맨틱 코미디에서 연출은 굉장히 중요하다. 배우의 연기만으로는 감정의 진폭을 크게 만들어 내기 어려운 것이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장르의 특성상 가볍고 그렇기 떄문에 연출에서 망쳐버리면 감정의 이입이 안되는 드라마로 전락한다. 로맨틱 코미디인데 하나도 로맨틱하지 않은 드라마들은 바로 연출에서 망쳤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신사의 품격에서 연출은 적절한 음악사용과 빠른 화면 전개, 그리고 다양한 카메라 워킹까지 버릴 것이 없다. 극의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고, 시청자들에게는 마치 한시간이 10분이 흐른 것 처럼 만들어 주고 있다. 특히 거품이 터질 때,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효과음으로 한 것은 연출의 백미였다. 거품 같았던 그 기억들이 깨질 때는 유리창이 깨지는 것과 같은 아픔을 수반한다는 것, 이 연출 만으로 김하늘이 사실은 얼마나 장동건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고, 얼마나 아파하는지를 제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게다가 배경이 바뀌는 연출과 같은 것들은 이 로맨틱 코미디를 더욱 샤방샤방한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사실 신우철PD의 연출력은 이미 입증되어 있었다. 그가 한 작품들만 봐도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온에어, 시티홀,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까지. 그는 거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고 보인다. 특히 판타지성을 적절히 사용하는 그의 연출은 로맨틱 코미디를 더욱 로맨틱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니 이 작품, 보면서 다들 설레고 있는 것이다. 자기 만의 영역을 구축한 연출가라면 이미 그 영역 안에서는 신이나 다름 없다고 볼 수 밖에 없다.



- 대본의 신

시크릿 가든을 보면서 '진정으로 여성을 위한 드라마'라고 평한적이 있다. 여자가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춘 드라마가 바로 시크릿 가든이었기 때문이다. 잘생긴 남자들의 게이 설정도 그랬고, 나는 연인할 테니 당신은 아빠 역할하라는 현빈의 대사도 그랬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여자를 챙겨 주고 돌봐 주는 아주 착하고 멋진 남자를 허락해주고 인정해 준다는 것은 여자들이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릴만큼 좋아할 만한 여성을 위한 설정이었다. 그래서 사실 신사의 품격이 남자드라마를 표방하지만 결국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를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거 남자드라마다. 전지현보다 임요환이 중요하다는 아주 가벼운 인트로 같은 것들도 남자 드라마임을 알려주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진짜 드라마인 이유는 바로 남자의 자존심을 이렇게 중요한 것으로 그려줬다는 것이다. 남자의 자존심을 이렇게 존중해준 드라마는 아마 거의 처음일 것이다. 보통 남자의 자존심은 나쁜 놈이나 세우는 것이었고, 남자 주인공은 여자가 잘못을 해 놓고 나서 약간만 뉘우쳐도 다시 용서해주고 뛰쳐나가야 하는 것이 공식이었다. 여자는 실수하고 남자는 화나지만 여자의 진심어린 사과에 곧 마음을 돌리고 더욱 사랑해준다는 것이 일반적인 공식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렇게 안한다. 아주 오래 동안 남자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그걸 설득력 있게 그려 줬다. 덕분에 남자는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찌질한 놈이 되지 않았다. 남자를 위한 드라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 본 여자들은 진이 빠진다고 얘기한다. 드라마에 몰입하는데 여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드라마가 진행되지 않으니 당연히 지칠만 하다. 이쯤이면 '장동건이 뛰어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안 나오고, 이쯤이면 '키스로 용서해주겠지?'하는데 자기랑 잘 것 아니면 끼부리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니 여성캐릭터에 감정이 이입되는 여성들에게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진이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건 그만큼 몰입되는 드라마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덕분에 남자의 자존심도 꽤 귀중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개인적으로 남자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도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박수칠 줄을 몰랐으니까. 하는 일의 특성상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인데도 박수까지 치며 공감한건 매우 드문 일이고, 신사의 품격은 그것을 해냈다. 


그러니 이 김은숙작가는 신이다. 남자의 심리, 여자의 심리 가리질 않고 다 그려낸다. 거기에 대사들은 또 어떠한가.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판다. 정말이지 대본의 신을 숭배하고 싶을 정도다.


이렇게 연기면 연기, 연출이면 연출, 대본이면 대본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으니 이 드라마가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성공할지, 어느 정도로 화제를 만들어 낼지가 이제는 더욱 큰 관심사이다. 물론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다. 일요일 방송이 끝나고 나서 예고를 안했다. 시청자들에게는 굉장히 잔인한 일이다. 예고가 없을 때의 허탈함은 드라마를 본 사람 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거 매우 안타까웠다. 그러니 이 부분만 수정된다면 신사의 품격은 아마 시크릿 가든과 같이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드라마로 끝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꽤 오래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없었던 남자드라마 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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