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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아이돌, 트렌디가 필요없는 추적자의 힘

by 박평 2012. 5. 29.

주말동안 '신사의 자격'과 '닥터진'이라는 꽤 괜찮은 드라마가 동시에 방영되어서 시청자로서 기분이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두 드라마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루종일 고민하였는데, 그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추적자'를 만나면서 머리 속에는 온통 '추적자'만 남게 되었다.


이 드라마는 사실 큰 기대를 받던 작품은 아니었다. 사전에 많이 노출 된 것도 아니었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작품도 아니었다. 그러나 단 1회 만으로 이 드라마는 자신의 힘을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켰다.


힘 1. 연기자


언제부터인가 모든 드라마에 아이돌 한 두명 쯤은 필수가 되었다. 사실 이에 대한 이유는 뻔하다. 아이돌 만큼 손쉬운 홍보물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아이돌은 충실히 드라마를 시청해 줄 든든한 팬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따라서 제작사 입장에서는 '아이돌'을 쓰는 것이 꽤 당연한 선택이다.


물론 이런 아이돌들이 훌륭히 연기를 해주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자기 몫을 넘어서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아이돌도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부의 아이돌은 극의 흐름을 끊어 먹고, 드라마를 학예회 수준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 아이돌이 없다. 그리고 오직 연기 잘하는 인물들로 가득 채웠다. 손현주, 김상중은 말할 것도 없고, 강신일과 박근형등 연기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이 모였다. 그러니 극의 흐름이 단 한 순간도 튀질 않는다. 이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가 지닌 흡입력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할 수 없이 그저 극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1화에서 죽은 딸의 다리를 쓰다듬는 손현주의 손연기는 연기의 대가들이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을 그대로 나타내 준 장면이었다. 


힘2. No 트렌디


트렌디 드라마가 가진 장점은 분명하다. 시청자들이 극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가볍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즉, 트렌디물의 장점은 친근함이다. 그러나 모든 드라마가 이런 트렌디함을 가져갈 필요는 없다. 때로는 정극이 갖는 힘이 필요한 작품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국 드라마는 모든 작품에 트렌디한 요소를 집어 넣으려 애썼다. 극의 장르에 상관없이 분위기 환기용으로라도 트렌디한 부분을 살짝은 가미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이슈를 만들고 이야기 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추적자는 이런 트렌디함이 없다. 그냥 정극으로 간다. 억지로 유행어를 사용하려고 하지도 않고, 친근한 설정을 넣으려 하지도 않는다. 요즘 말로 돌직구를 던진다.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치와 경제의 유착과 힘 대결, 정치인과 정치인 아내의 뒷모습, 돈이 없어서 딸의 생일 잔치를 제대로 차려주지 못해 한이 된 어머니, 돈을 위해 목숨을 빼앗은 친구 등, 이 드라마가 던지는 이야기와 화두는 그 자체만으로 시청자를 끌어 당긴다. 


덕분에 이 드라마는 묵직한 힘이 있는 드라마가 되었다.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숨이 막혔다',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와 같이 평을 하는 것은 바로 이 묵직한 힘, 정극으로서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3. 사랑안해


한국에서 장르 드라마는 참으로 꽃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사극은 '과거에 사랑하는 이야기',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사랑하는 이야기', 법정드라마는 '변호사, 검사, 판사들이 사랑하는 이야기'가 된지 이미 오래다. 이런 로맨스가 극에 꼭 필요한 양념으로 들어간다면 충분히 맛있는 양념이 되겠지만, 사실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사랑'은 주요리다. 오히려 장르가 양념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추적자, 제대로 장르 드라마다. 앞으로 봐야 알겠지만 쓸데없는 로맨스가 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간만에 '사랑'은 양념, '장르'가 주요리가 되는 드라마가 등장한 것이다. 


사실 외국의 다양한 드라마들, 특히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이 한국 드라마에 대해서 가장 아쉬워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장르성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한국은 일단 사랑얘기가 주요리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다 보니 매 작품이 결국 뻔한 귀결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장르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로맨스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중요하다. 추적자가 이런 드라마다. 그래서 추적자는 시청자들에게 간만에 새로운 드라마의 재미를 안겨줄 것이 분명하다.



추적자는 여러모로 매우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일단 유명스타가 등장하지 않는 이런 작품이 기획되고 방송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시청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봤을 때, 이 작품이 꽤 많은 인기를 끌어 줄 것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성공공식이 '스타'가 아니라 '작품'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아직 1화 밖에 방송되지 않았기 때문에 드라마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1화의 퀄리티가 계속 이어져서 극의 마지막에 묵직한 한방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해주길 바란다. 이런 작품이 잘 되어야 시청자들이 더욱 다양하고 질좋은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이기 떄문이다. 어쩄든,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이런 드라마가 기획 제작한 제작진들과 연기자들에게 일단 박수를 보낸다. 이 작품,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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