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엔터테인먼트

음악 정액제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by 박평 2012. 10. 4.

음악계 안팍에서 음악 정액제 폐지를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약 3~5000원에 해당하는 비용을 결제하면 무제한으로 음악을 듣거나 몇 십곡의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는 정액제는 사실 음원의 값어치를 매우 낮게 만든 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반면, 역으로 사용자들에게는 저렴한 비용을 내고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을 수 밖에 없는 제도이다. 


사실 정액제는 매우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음원의 가격을 급격하게 저하시키는 원흉이기 때문이다.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음원하나를 다운로드 받을 경우 60~120원, 스트리밍 1회의 경우에는 2~3원의 수익이 발생되는 데, 이 중에서 가수에게 분배되는 비율은 10%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노래 한곡이 100만 다운로드가 되어도 가수가 가져갈 수익은 1000만원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타이거JK라는 엄청난 가수조차 분유값을 걱정하는 곳이 되어 있다. 


이런 왜곡된 환경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창작에 대해서 제대로 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되지 않는다면 창작환경은 왜곡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적 후퇴를 이끈다. 대한민국의 만화산업계가 죽어버린 것에 책대여점의 역할이 가장 컸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정액제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한 의견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돈주고 사서 들을 음악이 없다. 아이돌 음악이 판치는 상황에서 정액제 정도면 적당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다. 때로는 불법다운로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러한 이유를 갖다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들을 음악이 없다면 안들으면 되는데, 구태여 정액제로 혹은 불법 다운로드까지 해서 듣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이 곳의 음식은 맛이 없으니 일단 먹고 돈을 안 내겠다' 혹은 '30일동안 매일 와서 먹어놓고 딱 5000원만 결제하겠다'는 말과 비슷한 것이다. 이것이 정당화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건 그냥 우기기일 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이돌 음악이 판치는, 혹은 들을 만한 음악이 없거나 매번 똑같은 형태의 음악만 가득한 상황을 문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런 환경을 만들어 낸 가장 큰 원흉이 바로 '정액제'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음원에 대한 정당한 가격이 매겨지지 않으면 기획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한 다른 수단들을 강구하게 된다. 


그 수단 중의 하나다 일단 맴버를 늘리는 것이다. 맴버가 많으면 각 맴버마다 팬이 생길 것이고, 팬들은 충실히 돈이 되는 앨범을 사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맴버를 확충하고 개인 팬을 늘리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팬이 충실하게 앨범을 사기 위해서는 '아이돌'인 것이 유리하다. 즉, 수익을 위해서 더욱 '아이돌'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음원을 최대한 많이 뿌리는 것이다. 정액제의 특징은 많은 이용자들이 1위부터 50위 정도까지를 선택없이 그냥 쭉 연달아 듣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많이 뿌려서 50위 혹은 100위까지만 곡을 집어 넣으면 어느정도 수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충실한 팬들이 충실하게 순위를 올려 줄 것이기 때문에 기획사는 아이돌들의 음원을 충실히 뿌리게 된다. 따라서 중요한 건 음악의 질보다는 '팬'층을 두껍게 하는 것이 된다. 


또한 음원으로 수익이 되지 않으니 다른 활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팀 안에 '연기'에 재능이 있는 맴버도 넣고, '예능'에 재능이 있는 맴버도 넣는 식의 조합형 아이돌을 구성하게 된다. 가수라면 적어도 노래나 랩, 하물며 춤이라도 되어야 하는 데, 이 것들이 부족해도 일단 예능을 잘할 것 같으면 맴버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맴버들의 외부 활동은 다시 팬층을 넓혀 줄 것이고, 이 팬들은 또 충실히 팬으로서 지갑을 열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돌이 아닌 형태는 어떨까? 기획사 입장에서는 하기가 쉽지 않다. 수익을 이끌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예능을 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야 하고 이렇게 많이 사람들이 알게 되어야 챠트 순위에 올라가게 된다. 일단 차트 순위에 올라가면 그나마 수익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얼굴 알리기를 포기하고 음악만 해서는 살아남기가 굉장히 힘들다. 


결국 정액제나 불법다운로드를 옹호하려 하는 '아이돌이나 천편일률적인 음악때문'이라는 핑계는 오히려 '아이돌이나 천편일률적인 음악'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좋은 음악, 새로운 시도가 아닌 팔릴 음악, 익숙한 음악의 반복, 충실한 팬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 정액제가 살아지면 불법 다운로드가 늘어날 것


정액제가 없어질 경우, 불법 다운로드가 증가할 것이므로 정액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 처럼 이는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엄정한 조치와 감시가 필요한 것이지, 이를 정액제 폐지를 반대하기 위한 이유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 


불법 다운로드는 말그대로 불법이다. 저작권을 훔치는 행위이다. 그러면 이것을 막을 대책을 만들면 된다. 단지 그 뿐이다 불법은 불법이니까.



- 지금들도 일부 가수들은 미친 듯이 돈 많이 벌어서 잘 살고 있지 않느냐?


맞다. 유명한 아이돌 가수들, 우리가 알만한 작곡가들은 값비싼 외제차 타고 다니고 엄청나게 비싼 집에서 호위호식한다. 그런데 나머지는 어떨까? 누구는 돈이 없어서 고기 먹고 싶다는 음악을 만들고 쓸쓸히 요절했다. 청년 유니온이 221명의 인디음악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에게 매달 들어오는 고정수입은 69만원에 그쳤다. 50만원 이하는 38%나 됐다. 


사실 정액제는 음악의 선택권을 오히려 강탈하는 경우가 많다.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정하고 그 것들을 반복으로 듣게 한다. 일부 인기있는 이들의 음악이 반복 소모되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순위에 올라가지 않는 혹은 유명하지 못한 가수들은 한번의 다운로드, 한번의 스트리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턱없이 적다. 게다가 이들은 해외 활동조차 쉽게 할 수가 없다. 수익을 얻기가 상당히 힘든 것이다. 


게다가 정액제는 오히려 잘되는 일부만 더 잘되게 하는 승자독식형 생태계를 강하게 구축한다. 무제한 서비스가 아니라면 매번 똑같은 음악, 뻔한 음악들이 그렇게 많이 소비될 수 있을까? 사용자들은 똑같은 구조에 살짝만 바꾼 음악에 지속적으로 비용을 지출할까? 팬층이 많은 이들이 순위를 이끌어 올려 놓으면 좋던 싫던 그 음악을 계속 듣게 되는 현상은 정액제 덕분에 구축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간다. 


정액제 폐지는 그런 점에서 이미 잘살고 있는 뮤지션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해외 활동을 하든, 아니면 팬심으로 앨범을 팔든 어떻게든 자기 수익을 얻어낼 것이고, 그럴 창구도 많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영세 음악가들에겐 음원에 제대로 된 값어치가 매겨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정액제 폐지를 반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의견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의견들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 보았다. 물론 이 것 말고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고, 또 논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액제 폐지'를 찬성하는 입장의 이 글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작권은 지켜져야 된다는 것이고, 그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문화의 발전을 이룬다는 당연한 법칙이다. 그 정당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혹은 어떤 비율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해야 겠지만 적어도 한 장르에서 일가를 이룬 이가 분유값을 걱정해야 하는 시스템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Ps) 과거 음원시장 구조에 대한 글을 첨부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Tr.j's TV보기] - 나는 가수다, 아이돌, 망한 가요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