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엔터테인먼트

서태지 아카이브, 사생팬이 아니라 공생팬을 보여주다.

by 박평 2012. 3. 30.


서태지 아카이브가 문을 열었다. 서태지에 대한 모든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이는 서태지 팬들이 주축이 되어 2010년에 정식으로 소속사에 저작권 승인을 받고 자료를 모아 만든 일종의 서태지 기록관으로서 팬들이 직접 기획하고 직접 비용을 마련해서 만든 일종의 헌정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서태지 아카이브는 단순한 헌정공간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역사로서의 한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의미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컨텐츠'의 생산을 할 수 있는 인물이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자료'가 제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중 문화계에 대해서 글을 쓰려면 글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료들이 필수적으로 필요한데, 그 자료들을 정확하게 머리속에 넣고 꺼내서 사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중문화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 '대략 이 시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정도의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도서관이나 신문사, 방송사에 가서 관련 시기의 자료를 뒤지고 적절한 참고자료를 찾아내야 했고, 그를 바탕으로 컨텐츠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게 아니면 평상시에 다양한 자료를 미리 정리해 놓음으로서 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컨텐츠를 제작하는 방법을 써야 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결국 컨텐츠 생산을 위해서는 오래 동안 그 분야에 대해 정통해야 했고, 관련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적용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또한 '컨텐츠'를 생산한다 해도 신문이나 방송 같이 그것을 유통할 경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도 '컨텐츠'를 소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컨텐츠'는 소용없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컨텐츠'의 생산은 '전문가'이면서도 '유통경로'를 지니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환경을 바꾼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 덕분에 모든 이들이 쉽게 '자료'를 찾아 낼 수 있게 되었다. 검색만 하면 정확한 사실 관계를 빠르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종 블로그, SNS등을 통해서 자신의 컨텐츠를 '유통'시키는 것도 쉬워졌다. 이렇게 환경이 변함에 따라 수 많은 컨텐츠 생산자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컨텐츠 생산과 유통이 쉬워지면서 한 가지 큰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바로 컨텐츠의 질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미 알겠지만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사실로 가정하여 '글'을 생산한다던가 혹은 자신의 막연한 추측이 마치 진실인 것 처럼 포장하여 남을 비난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로 발생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수많은 정보 생산자들이 생기면서 정보의 질은 저하 됐고, 확인 되지 않은 루머들이 '정보'인 것처럼 유통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면 '서태지 아카이브'가 얼마나 대단한 프로젝트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사실 본인도 문화평론가를 하고 있지만 대중문화전체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래서 언제나 글을 쓸 때는 자료조사를 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팬들이 가지고 있는 것 만큼 아주 깊고 세부적인 자료까지는 알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서태지 아카이브'는 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세세한 자료들을 정리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자료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쉽고 빠르고 정확한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서태지 아카이브에 들어가기 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무대가 MBC '특종TV연예'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때 역대 최하 점수를 받은 것이 뇌리에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데뷔무대는 KBS '젊음의 행진'이었다. 서태지 아카이브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는 정보일 것이다. 지금도 검색사이트에 '서태지 데뷔무대'를 치면 MBC '특종TV연예'에 대한 이야기가 검색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이 데뷔무대도 직접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콘서트에서 부른 노래의 순서까지 기록되어 있으니 이 자료의 세세함과 정확성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설령 잘못된 정보가 있더라도 수정, 보완이 가능한 웹2.0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이 자료는 더욱 정확하고 심도 있어 질 것이다.

앞으로 '서태지 아카이브'는 서태지관련된 자료를 찾는 이들, 예를 들어 칼럼니스트, 기자, 학생, 연구가등등 수 많은 사람들에게 세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해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태지에 대한 오해나 왜곡은 줄어들 것이고, 그는 조금 더 정확하게 평가 받게 될 것이다. 이건 확인되지 않은 온갖 루머에 시달리기 좋은, 그리고 왜곡되기 쉬운 대중 연예인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최근에 자신이 사랑하는 연예인들을 스토킹하는 사생팬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사생팬은 자기가 사랑하는 가수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했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랑하는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팬 자신의 가치도 한 없이 낮추고 있다. 그에 반해 서태지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를 한없이 높게 올려주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서태지팬 자체의 위엄도 높이고 있으니 이들을 '공생팬'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서태지팬들은 언제나 팬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팬활동을 보여주었다. 사전심의제도 폐지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도 이들이었으며 서태지숲을 조성하는 독창적인 팬활동을 해낸 것도 이들이었다. 그리고 서태지 아카이브로 정점을 찍었다. (이들의 활동내역 또한 서태지 아카이브에서 확인이 가능했다) 

결국 서태지팬들은 팬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하며 본보기가 되는 활동들을 지속하고 있다.

팬과 스타는 공생관계이다. 스타가 살면 팬이 살고, 팬이 살면 스타가 산다. 이 공생관계를 통해 서태지와 서태지팬들은 서로가 윈윈하는 가장 바람직한 팬과 스타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서태지 아카이브는 스타와 팬의 공생관계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자, 팬이 스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팬과 스타의 관계가 얼마나 건전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연예인은 한없이 소비되는 존재이다. 이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가진 특성이다. 이렇게 소비될 수 밖에 없는 연예인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팬일 것이다. 받는 팬에서 주고 받는 팬으로의 진화심지어는 스타를 정점에 올려주는 팬으로서의 각성은 대한민국의 팬문화의 각성이기도 하며, 이런 팬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문화계의 큰 선물이라고 볼 수 있다. 

서태지의 팬들이 또 무슨 엄청난 활동을 해낼지는 예측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시절 그 아이들은 지금 스타와 함께 이렇게 커가고 있으며,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커 나갈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