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엔터테인먼트

데뷔 20주년, 문화대통령 서태지의 유산

by 박평 2012. 3. 23.


20년 전,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앨범이 발매 되었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크게 뒤흔들지를 예측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곧 새로운 세상의 등장과 같았고, 우리가 컴퓨터 혁명, 인터넷 혁명 등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던 것 처럼, 서태지의 등장이 어떤 변화를 만들고, 어떤 것을 남길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가 만든 변화, 혹은 그가 가져온 변화, 아니면 그가 남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럴 가치가 있는 인물로 20년의 세월을 지내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가 남긴 유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1.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의 개막.
그 전에도 인기 가수들은 많이 있었다. 나훈아 남진은 현재의 빅뱅 못지 않은 팬층을 가지고 있었고, 조용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대한민국의 초대 아이돌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조용필과 같은 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아이돌이 지니고 있는 특징적인 것들을 모두 구축한 것이 서태지라는 점에서 그가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열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없다.

발매와 함께 급격한 판매 증가와 빠른 속도로 1위를 이뤄내는 전개.
춤과 패션, 퍼포먼스가 강조된 보여주는 무대의 실현.
사랑 이야기에서 벗어난 사회적 의미를 지닌 가사.
강력한 팬덤의 구축.

이 외에도 다양한 아이돌의 특징을 구축한 것이 바로 서태지이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부터 아이돌에 대한 시장의 확신이 만들어 졌으며 팬문화가 체계화 되었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 덕분에 음악계는 아이돌의 시장성을 확신했고  이후 HOT, 젝스키스를 필두로 한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여는데 공헌했다. 


2. 앨범 준비를 위한 활동 중단.
서태지 이전에는 활동 중단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서태지가 활동 중단을 선언한 이후로 앨범준비를 위한 활동 중단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고, 이를 통해 조금 더 전문적인 '뮤지션'의 이미지가 구축되었다. 그냥 앞에 나와서 계속 노래하고 춤추고 '소모'되는 가수가 아닌, 전문적으로 '생산'을 하는 '뮤지션'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활동중단은 계속해서 유행처럼 이어졌다. 물론 최근에는 예능 활동과 같은 부가 활동이 중요해 졌기 때문에, 활동중단이라는 방식을 사용하는 가수들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수장으로 있는 YG Entertainmet의 가수들은 여전히 활동 중단이라는 방식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TV에 많이 나와 소비되지 않으며 방송활동이 끝나면 상당기간 휴지기를 갖고 있다. 그 덕인지 타 기획사 아이돌에 비해서 YG의 아이돌들은 '뮤지션'의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다.


3. 새로운 장르의 음악도입.
서태지와 아이들이 랩을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홍서범의 '김삿갓'을 최초의 한국랩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랩이라는 장르를 대중적인 성공으로 이끌어 낸 것은 서태지이다.

2집 하여가 에서는 한국의 전통악기를 힙합에 접목시키는 실험을 보여준다. 하여가에 삽입된 태평소 가락이 아직도 귀에 익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실험 역시 그는 대중적으로 성공시켰다.

3집 교실이데아 에서는 헤비메탈을 끌어온다.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는가~'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노래방에서 목을 긁어가며 이 노래 한번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시 성공했다. 

4집 컴백홈에서는 갱스터 랩이었다. 상업적인 성공과 더불어 가출한 아이들이 실제로 집으로 돌아오는 등 사회적인 영향력을 생산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당시 컴백홈이 '사이프레스 힐'의 음악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얻었는데, 이때 서태지는 사이프레스 힐에게 직접 표절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GD의 Heartbreaker의 표절시비 당시 플로라이다가 표절이 아니라고 직접 확인해 준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이렇게 서태지는 매 앨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소개했고, 성공시켰다. 이후 락을 바탕으로 한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공고히 했지만, 그 안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등, 그는 음악적으로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해 왔으며 항상 성공해왔다. 얼마전에는 오케스트라와 같이 협연을 함으로서 청중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즐거움을 소개해 주기도 하였다.


4. 트랜드 세터.
그들이 입은 옷은 바로바로 유행했다. 그들 덕분에 파스텔톤 남방이 유행했고, 그들 덕분에 가격태그를 떼지 않고 입는 옷이 유행했으며, 그들 덕분에 보드복이 유행했고, 그들 덕분에 총천연색 염색도 유행했다. 그들은 언제나 유행을 이끌었고, 사람들은 충실히 그들을 복제했다.

이런 그들의 혁신적인 스타일과 무대에는 숨겨진 뒷 이야기가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당시만 해도 '음악'은 서태지, '춤'은 이주노가 대표성을 지닌 반면에 양현석은 하는 것이 별로 없는 인물로 느끼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항상 유행을 만들어 냈던 이들의 안무나 패션이 상당부분 양현석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이를 상기시켜보면 현재 YG의 수 많은 소속가수들이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세터들이 된 것의 중심에는 여전히 양현석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부분 한부분 뜯어서 하면 책 한권이 나와도 모자를 것이다. 그들이 대한민국 사회와 문화계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그들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분명히 달랐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존재는 축복이었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양현석은 대한민국 최고 기획사중 하나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이뤄나가고 있으며, 서태지도 여전히 음악적인 진화를 이뤄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그들에 대한 평가를 끝내는 것은 섣부른 일이라고도 보인다. 앞으로 그들의 전설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그들이 어떤 전설을 계속 만들어 갈지를 기대해 보는 것도 참으로 재밌는 일이 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