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는, 음악을 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듣고 싶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앨범을 사야만 했다. 그러나 앨범을 사기에는 항상 돈이 부족했다. 한장에 5000원하는 테이프나 10000원하는 시디를 마음껏 살만큼 우리집은 부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짝퉁 테이프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짝퉁도 2500원이나 했고, 내가 듣고자 하는 노래가 모두 들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라디오'를 노려야 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내가 듣고 싶은 노래가 나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노래가 나오면 환호하며 재빨리 녹음 버튼을 눌렀다. 노래 중간에 DJ의 멘트가 나오기라도 하면 그건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 다시 그 노래를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그렇게 나만의 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없던 그 시절 노래는 그 자체로 한편의 이야기였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노래가 듣고 싶다고 칭얼대고 테이프에 녹음하고 했던 그 시절, 큰 맘먹고 산 앨범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들고와서 가사 하나하나를 밤새서 외우고 노래를 듣던 그 시절에 나에게 음악은 스펙타클한 영화이기도 했고, 따뜻한 소설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음악에는 나만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1분도 되지 않아서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었고, 내가 가진 음악의 양은 심하게는 CD 몇천장에 달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음악은 많아 지고 풍요로워 졌지만 나는 그 음악에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었다. 내 입밖으로 '사랑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던 시절, 그 한번의 '사랑해'가 가진 힘이 어느덧 습관이 되어버린 '사랑해'와 같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사랑해'라는 말도 '음악'도 그 이야기를 잃어갔다.
'나는 가수다'의 음악이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노래 자체의 힘도 있지만 그 안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없는 음악만이 가득했을 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음악은 중독성이 있거나 수많은 팬덤 덕분에 하도 많이 흘러나와서 자연스레 익숙해진 그런 곡들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이야기가 있는 노래가 나오니 사람들은 거기에 매료 될 수 밖에 없었다. 드라마의 OST가 인기를 끌어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있다는 것.
무한도전은 음악에 이야기를 담았다. 그것도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산문의 이야기를 담고, 누군가에게는 버디무비 같은 이야기를 담고 누군가에게는 톡 쏘는 시트콤 같은 이야기를 담는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음악에 녹이고 있다. 이렇게 음악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다양한 음악은 'MT'를 통해서 그저 하나의 노래가 아닌 하나의 앨범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앨범의 가치는 없어지고 노래만이 남았다. 앨범을 다 아우르던 가수의 그 이야기를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모든 맴버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음악 얘기를 하게 함으로서 비록 장르는 다 다르고 스타일도 다 다르지만 '무한도전'이라는 이야기가 녹아 들어간 하나의 '앨범'이 나올 수 있게 하였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무한도전은 '음악'이 비록 흔해진 지금이지만 그럼에도 '음악'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난 그렇게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는 무한도전이 그리고 그 맴버들이 너무 고맙다. 마치 '사랑'이라는 것이 너무나 흔해져버린 지금 시대에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을 그려주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음악은 흔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다. 사랑처럼. 무한도전의 진지하고도 유쾌한 시선이 그래서 지금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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