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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임창정 - 페이소스가 그득한 배우 (2007년 글)

by 박평 2009. 2. 13.


마침내 그날이 왔다. 내가 엄정화 편을 쓰면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만능엔터테이너로서 언급한 임창정을 언젠가 다룰 일이 있을 거라고 했다. 바로 그날이 오늘인 것 같다. 나는 보통 배우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할 때, 페이퍼를 작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배우에게 관심이 집중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창정의 경우는 운좋게 색즉시공 시즌2의 개봉이 코앞이지만 그 때문이라기 보다 스카우트에서 받은 강한 느낌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임창정은 확실히 최고다.

 

임창정을 얘기하려면 당연히 가수 얘기 부터 해야 한다. 왜냐면 임창정이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작품이라고 하면 '비트'인데 이 영화가 1997년이고, 가수 데뷔는 95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 몇몇 작품에서 엑스트라급으로 나오긴 했지만 '비트'야 말로 임창정이 영화인생 시작이라고 봐야한다.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이 작품으로 받았으니까.

 

가수 얘기로 돌아가자. 어느날이었다. TV에서 SBS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기억나는 가수는 딱히 없었다. 룰라의 3!4!가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탁재훈의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데뷔곡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하진 않다. 그런데 임창정이 나왔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미 나에게로'라는 노래가 그랬다. 매우 충격적인 중국풍의 음악. 그러다 보니 처음에 나는 '중국 가수'가 나온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가사가 한국말이더라. 그것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러다 2집이 나왔고, 망했고, 3집이 나오면서 대박이 났다. '그때 또다시'이 음악으로 인해 임창정은 내는 앨범마다 족족 성공하는 최고의 가수로 우뚝섰다. 왜 임창정이 이렇게 인기가 많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요계 3대 미스테리가 '임창정, 김민종, 쿨'이었으니까. 도대체 앨범을 낼때마다 성공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글세... 노래도 좋았고, 감성이 묻어나서? 그보다는 질러서가 맞을 것 같다. 한국사람은 질르는 것을 좋아하고 임창정은 잘 질렀으니까.

 

지르다. 이 것은 임창정 연기의 핵심적인 단어이다. 자기자신을 극한으로 질러버리는 그의 연기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로 들어가보자. 정우성의 친구로 나온 임창정이 보여주는 연기는 매우 훌륭했다. 누가 그처럼 자연스레 화장실에 본드 하는 연기를 보여줄 것이며, 정우성에서 '잤냐? 잤냐?'하면서 따질 수 있겠는가? 그가 아니면 누가 친구에게 오토바이를 돌려주며 돌아서는 역을 하겠는가?

 

이미지를 극한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임창정이기 때문에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 뿐이 아니다. 단순히 질러서는 '오버'외에는 안된다. 그런데 임창정이 지르면 '오버'가 되지 않는다. 바로 '오버'를 막아주는 2가지의 큰 방어막이 임창정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방어막은 얼굴에 있는 미소, 웃음, 장난끼 이다.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임창정은 웃기다.'라는 이미지를 주는 모습이다.

 


 

그런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영화들이 시실리2km라던가 두사부일체(우정출연)등이다. 실제로 임창정은 웃기는 배우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웃음을 적극 활용한 영화는 많이 하질 않았다. 주로 우정출연이고 그것을 제외하면 '시실리2km'정도라고 봐야 한다. 이 영화에서도 정말 코믹적인 장치들은 대부분 주변으로 넘기긴 했다. 그나마 많이 드러나긴 했지만. 정말 임창정이 '웃긴다'라는 이미지를 쌓은 곳과 표출한 곳은 절대 영화가 아니다. 수많은 TV방송에서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미지가 깊이 박혀서 임창정을 보면 그냥 웃겨줄 것 같은, 그래서 별거 안해도 그냥 기분좋게 만드는 그런 기대를 받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따지고 보면 임창정은 '웃기는'영화에 출연하지만 자신이 직접 '웃기는'역은 지양하는 편이다. 물론 색즉시공에서 임창정은 웃겼다. 위대한 유산에서도 웃겼다. 하지만 그정도가 끝이다. 생각보다 적지않나? 그리고 저 영화안에서도 임창정은 '웃음'의 메인이 아니다. 색즉시공의 메인은 여러 엽기적인 이벤트 들과 조연들(최성국을 비롯한)의 담당이었고, 위대한 유산은 '김선아'가 진짜였다.

 

 

그외 우리가 웃길것이라 생각하고 본 임창정의 영화들 '내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1번가의 기적', '만남의 광장', '스카우트'등에서 임창정은 그다지 웃기지 않는다. 이는 동시대의 가장 웃기는 배우중의 하나인 차승원과 비교해보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차승원은 자기가 웃긴다. 하지만 임창정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창정은 왜 자꾸 재밌는 영화에 출연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를 재밌다고 생각하는가? 이유는 하나다. 그는 '페이소스'를 가진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가 질러도 그를 '오버'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바로 다른 방어막이 이 '페이소스'이다. 쉽게 말하면 슬픔이다.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넘친다. 비트안에서의 그의 연기가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슬픔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친구에 대한 아쉬움 섭섭한, 친구를 잃을 수 밖에 없다는 슬픔. 그것이 그의 얼굴위로 묻어난다.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그 모습에 가슴아파 할 수 밖에 없다. 슬픈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얼굴에 슬픔이 묻어나오니까.

 

실제 코메디의 여러가지 요소중에서 '풍자와 슬픔'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것을 가장 잘 사용한 코메디언이라고 한다면 누가뭐래도 '찰리채플린'을 뽑을 수가 있는데, 그가 왜 최고라고 인정받는지는 그의 작품에 녹아 있는 '풍자와 슬픔'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작품에 녹아있는 슬픔들이야 말로 그의 코메디를 최고로 만들어 주는 가장 큰 힘이다.

 

대한민국 코메디의 단점은 '슬픔'이 없다는 것이다. 이 '슬픔'이야말로 코메디의 궁극을 만들어 주는데도 불구하고 없다. 그런데 '임창정'을 데려오면 이게 된다는 것이다. 색즉시공에서 '임창정'이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하는, 자기도 슬프고 괴로우면서도 애써 미소지으면서 하는 차력씬에 있다. 1번가의 기적에서도 마찬가지다. 철거되는 지역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는 결국은 철거업자들에게 달라들어 후줄근하게 맞고 마는 그 장면에서도 임창정 얼굴에 가득한 슬픔이 빛을 발한다.

 

이런 식이다. 임창정은 웃길 것 같지만 전혀 웃기지 않다. 하지만 그안의 '페이소스'는 대한민국 어떤 배우보다 최고이다. 그래서 임창정이 나온 영화중에서 극히 성공한 작품들은 웃음을 주는 부분을 임창정이 아닌 다른 조연들이나 사건에 일임하고 임창정은 페이소스가 그득한 부분에 중심을 두게 하는 영화들이다. 그러면 100%성공했다.

 

 

그런점에서 색즉시공2 도 성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인다. 만약 임창정이 가지고 있는 페이소스를 잘 사용했다면 소위 대박날 가능성이 충분한 영화라고 보인다.

 

임창정의 '지르다'연기와 그를 뒷받침하는 '웃기는', '슬픔'의 이미지. 이것이 조화를 이뤄 임창정이라는 배우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그가 쌓은 '연기의 내공'과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비트' 나 '자카르타'에서 보여준 연기들, '시실리2km', '자카르타'같은 영화를 고를줄 안목. 이 모든 것들이 배우 임창정을 대한민국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지 않았을 까 싶다.

 

임창정은 최고다. 이미 말했지만 흠잡을 데가 없다.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다른 초짜들처럼 앞이 심하게 기대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단지 한번 그가 코믹과 페이소를 완전히 버린 역을 한번 해주면 어떨까 싶다. 물론 박중훈도 '세이예스'에 나와서 큰 실패를 경험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 자신안의 가장 큰 무기 2가지를 버리고 날 것의 연기로만 영화안에서 호흡하는 그 모습이 보고 싶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기대하면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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