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엔터테인먼트

임수정 - 과연 진짜가 될 수 있을까? (2007년 글)

by 박평 2009. 2. 13.


 

 

임수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말해서 임수정을 다루는 것은 나로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동안 쓰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약간 회피를 했었다. 그렇지만 제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의 추천도 있고, '행복'이라는 영화가 근래에 개봉하기도 한 것을 계기로 삼아 회피해왔던 그녀의 이야기를 좀 해야 겠다.

 

 


 

이야기의 시작은 장화, 홍련으로 가야 한다. 그녀가 세상에 인식될 수 있었던 첫번째 작품이니까. 이 작품 장화, 홍련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임수정이 아니다. 문근영이었다. 물론 '임수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가지 이미지 '매우 예쁜 동안', '아파보임', '강함'을 모두 이 영화안에서 선보였고, 극의 중심도 그녀에게 있었으며, 카메라는 내용상의 이유로 항상 임수정을 메인으로 잡고 문근영등은 주변으로 잡아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근영을 주목했다. 왜냐? 문근영은 화면을 장악하는 파워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김지운 감독이 '문근영'을 칭찬하고 '임수정'을 '심은하'에 비견한 것을 못 마땅해했던게 사실이었다. 왜냐! 내가 봤을 때, 그 영화에서 찾아낸 보석은 '임수정'이 아니라 '문근영'이었으니까.

 

장화, 홍련이 개봉한지는 매우 오래 되었고, 임수정은 그동안 여러작품을 찍은 지금,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내 말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임수정'='심은하'라는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우선 임수정이라는 배우를 좀 뜯어 보도록 하겠다. 임수정은 정확하게 3가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첫번째는 '매우 예쁜 동안'이다. 알다시피 그녀는 매우 동안이다. 실제 나이는 나보다 한살이 많은 28살인데 내가 그녀와 곁에서 걸어가게 된다면 다들 나를 임수정의 삼촌뻘로 볼 정도로 그녀는 심하게 어려보인다. 어려보인다는 점에서는 최강희와 거의 동급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심하게 예쁘다. 큰 눈과 오밀조밀한 코와 입은 그녀에게 매우 예쁜 얼굴을 선사해주었다. 나이를 초월한 예쁨. 그것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첫번째 이미지이다.

 

두번째 이미지는 '아파보임'이다.

우선 그녀는 눈이 크다. 그래서 그녀의 눈은 매우 강조된다. 특히 그녀의 눈 주위는 큰 특징이 없기 때문에 눈이 강조되는 것은 더욱 심하다. 쌍꺼풀 라인은 물론 바르게 잘 잡혀있지만 너무 진하거나 너무 완벽한 느낌을 주진 않으며, 흔히 애교살(?)로 보이는 눈 및의 두덩이도 그렇게 심하지 않다. 그냥 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큰 눈이 강조가 된다.

 

그러다 보니 눈에 물기가 생기면 금새 그 큰 눈을 다 덮을 것 처럼 보이게 된다. 살짝만 눈물이 고여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치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얼굴은 너무나도 희다. 너무 희다 보니까 창백한 느낌을 주고 이러한 피부색과 눈이 합쳐지면 '아파보임'이라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 한가지 그녀의 얼굴 라인은 무척이나 엷은데 얼굴선이 엷을 수록 가냘퍼 보이고 약해 보이는 느낌을 준다. 결국 그녀의 얼굴을 총체적으로 아파 보이는 얼굴임이 분명하다.

 

세번째 이미지는 '강함'이다. 이 강함이라는 이미지는 정확하게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강함'은 단순히 쌔보인다가 아니다. '성숙'의 이미지 이기도 하고, '세상의 풍파를 겪어본' 속된말로 '좀 굴른'듯한 느낌을 주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쉬어보이지 않는'정도의 설명도 가능 할 것 같다.

 

이 3번째 이미지는 그녀 자체를 이해하려고 하면 좀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다. 원래 동안인 사람들은 큰 고민이 있다고 한다. 나이보다 어려보이기 때문에 주위사람들이 쉽게 대하고, 막대하고 그런 일들이 많이 펼쳐져서 짜증이 난다는 것이 그것인데, 나는 임수정도 그런 것들을 많이 겪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런 일들 때문에 동안인 사람들은 좀 까탈 스러운 면도 있고, 퉁면스러운 면도 있는 경우가 있다. 쉬워 보이지 않으려고 말이다.

 

거기다가 어리니까 '세상 살아온 경험'을 좀더 티내는 경향이 있다. '나 무시하지 마라!'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런 것들이 사람 얼굴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나는 임수정도 이럴거라고 생각하는데, 가끔 '임수정은 싸가지가 없데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생각이 정확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녀는 아마 싸가지가 없다기 보다는 그냥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일 것이다.

 

내가 말한 '강함'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 것이다.

 

임수정은 이 3가지 이미지를 영화속에서 풀어 놓는다. 장화,홍련을 보면 이 3가지 이미지가 다 드러나는데 우선 동안은 말할 필요가 없고, 아파보이는 것 또한 자연스레 드러나며, '강함'은 문근영의 언니로서 자기도 약해 보이는 것이 '문근영'을 돌보고 지키려 하고 때로는 챙기는 모습에서 드러나게 된다.

 

다음으로 TV에서 난리가 났었던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는 '예쁜 동안', '강함'의 이미지가 사용되는데, 만약 다른 어떤 작품보다 이 작품의 임수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파보임'이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가리고 '강함'을 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아파 보이는 애들이' 전혀 안그런척 하는데 실제로는 '약한(아픈=약함)'모습을 보이면 참 매력적인 법이다.

 

이 작품에서 임수정은 당당하지만 원래는 속에 약함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의 결말은 관객에게 충격적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의 자살은 속안의 약함을 이겨내고자 하는 주도적 강함에서 나온 자살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관객은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배우가 자살을 했다면 '고통을 이기지 못한'이미지로 끝났을 것이고 그렇다면 엔딩은 '오버!'로 느껴졌을 것이다.

 

김래원과 공연한 'ing'에서도 3가지 이미지는 다 나온다. 새드무비에서는 '아파보이는'이 사라지지만 마지막 우는 장면을 보면 진짜 고통스러워 보이므로 결국 3가지 이미지는 다 사용된다.

 

이렇게 임수정은 이 3가지 이미지로 영화안에서 소모 되고 있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임수정이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 이 3가지 외에는 없다. 코메디를 한 것도 아니고 액션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이 3가지이다. 그러므로 나는 임수정이라는 배우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느꼈다. 연기가 전도연처럼 모두를 압도할 정도도 아닌데다가 외모나 혹은 풍기는 느낌에서 오는 이미지가 너무 명확함으로 이것을 벗어날 수도 없다고 봤다. (강한 이미지는 배우에게 한계로 작용한다.)

결국 한계가 명확한 배우, 그러나 충분히 좋은 배우 정도로 임수정을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는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상당히 힘들다. 평생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류승범이 양아치 느낌을 버릴 수 있을까? 봉태규는 어떤가? 정우성 또한 마찬가지 아니던가? 똥개를 찍긴 했지만 변하진 못했다. 친구로 사람된 장동건도 안타깝지만 이내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배우는 자기 이미지 틀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 안에서 최고가 되던가 아니면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던가. (결국 설경구같은 배우들은 복 받은 거다. 특별한 이미지가 약하기 때문에.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자기가 가진 강한 이미지를 깬 배우가 있다. 연기가 절정에 오르면 자기 이미지를 깰 수도 다른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시킨 배우. 바로 유오성이다.

 

 

이 얼굴을 봐라. 비트에서 정우성의 친구로 나와서 건달역할을 했을 때, 얼마나 어울렸는가? 간철 리철진 또한 얼마나 어울리는가? 친구의 건달 역시 죽이지 않는가? 이 얼굴을 봐라 건달 아니면 어쩌겠는가?

 

그렇지만 이 사람 그 한계를 깼다. 특유의 어리벙벙한 표정을 개발해내서 '연예인 매니저'역으로 안방극장에 안착했고, 나중에는 순수한 표정을 만들어내서 (이 얼굴에 순수한 표정이다!) 맬로도 성공적으로 해 냈다. 이 배우 누가 뭐래도 '탑'에 위치하고 있는 배우이다. 한동안 극장에선 성공작이 없었지만 그래도 '탑'이라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지 않은가?

 

유오성 얘기를 한 이유는 '임수정'이 자신의 이미지를 뛰어 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의 시초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이다.

 


 

이 영화에서 임수정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쁜 동안'이라는 이미지를 눈썹을 밀어 버림으로서, 그리고 연기 내내 이쁜 척 하지 않음으로서 과감히 깨버린다. 그리고 '아파보임'이라는 이미지를 이전의 '연약함, 약함'이라는 성격에서 '정신질환'이라는 전혀 상반된 '아파보임'으로 바꾸기도 한다. '강함'이라는 이미지는 이 작품 자체에서 좀 애매하게 표현 된다고 봐야 하는데 딱히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논쟁의 여지가 많은 영화지만 어쨌든 배우들의 연기에 있어서 나는 이 작품을 매우 만족하면서 봤다. 임수정도 좋았고 정지훈도 좋았다. 결국 임수정은 자신의 이미지를 깨거나 변주해서도 어느정도 좋은 여기를 보여 준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임수정이 그냥 괜찮은 배우 이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약간의 희망을 내게 주었다.

 

가장 최근작인 행복을 보고 그 희망은 좀더 강해졌고, 약간의 확신으로 변하였다. '행복'은 임수정이 가지고 있는 3가지의 모든 이미지가 굉장히 극단적으로 들어가 있는 영화다. 그렇지만 예전에 보여준 이미지의 표출과는 수준이 다르다. 그러니까 연기가 매우 좋아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임수정을 잘 보라. 그녀의 손, 그녀의 몸, 그녀의 얼굴이 다 연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3가지 이미지를 매우 훌륭한 연기로 스크린에서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전 영화들이 단순히 이미지가 표출된 수준이라면 행복에서는 그 이미지가 이미지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연기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솔직히 놀라웠다. 이정도의 연기가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황정민 때문일까? 공효진 때문일까? 아니다. 당연히 이건 허진호 감독 때문이다. 심은하의 연기가 화면에서 펼쳐졌다고 느끼는 최초의 작품인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감독인 허진호 때문이다. 나는 그가 '임수정'을 제대로 조련시켰다고 믿는다.(어떤 방법을 썼던 간에.)

 

이 작품을 보면 나는 임수정이 '이미지'안에 갖힐 것이라는 생각을 추호도 할 수 없다. 오히려 '이미지'를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임수정은 단순히 좋은 배우를 넘어서는 진짜 배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심은하는 과대평가 된 점이 분명히 있지만 시대를 쥔 진짜 배우 였다. 나는 '김지운 감독'의 말에 따라 '임수정'이 '심은하'수준이 될 수 있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서 앞으로 그녀의 행보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만 같다. 언젠가, 그녀가 전도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어쩌면 그녀를 이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김지운 감독'은 어떻게 임수정을 그렇게 빨리 꿰뚫어 봤을까? 정말 참... 대단할 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