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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지독하게 더럽고 추잡한 드라마 싸인

by 박평 2011. 2. 11.

싸인은 더럽고 추악하고 추잡하다. 아무리 봐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재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더러움과 추잡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싸인은 재밌지만 더럽고 추잡하다.


- 잘만든 장르 드라마.


얼마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그놈의 연애질이 안나오고 그놈의 출생의 비밀이 안나오고 정말 깔끔하게 장르로 승부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 말이다. 그런점에서 나는 싸인이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장르 드라마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대한민국에서 장르드라마로 이정도 해낸다는 것은 정말 작품 자체가 훌륭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까우니까.

물론 싸인은 미국식 장르 드라마와는 약간 괘를 달리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 작품이 더욱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한국을 집어 넣고 있으며, 실제 한국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을 각색하고 있다. 

처음에 나왔던 서윤형 사건은 고 김성제 사건의 재구성이고, 여성 연쇄살인마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 미군 총기사건은 이태원 버거킹 살인사건, 그리고 대기업의문사 사건에서는 매값재벌사건 과 대기업내 사망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싸인은 잘만든 장르드라마이면서 동시에 한국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것이 싸인의 가장 큰 힘일 것이다.


- 더럽고 추잡한 드라마. 그것이 한국

내가 싸인을 더럽고 추잡하다고 부른 이유는 딱 한가지다. 처음 서윤형 사건때부터 오직 상대적 약자들만이 고통받고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윤형 사건때 살인자는 해외를 돌아다니며 잘 살고 있다. 참 별거 없었던 트럭 연쇄살인마는 당연히 잡혀 들어갔지만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서 부검을 대충한 이명한원장은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다. 뭐 그게 국과수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미군 총기 사건때를 보자. 마치 미군 총기 사건이 밝혀지면 무지하게 문제가 생길것 처럼 아주 난리를 치지만 결국 미국에 날아가서 회담하면 되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 된다. 참고로 이 것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비록 그들이 조폭이라 할지라도) 3명이 죽었고, 그들중의 2명은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부검 결과도 조작되었다.

재벌회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상대적 약자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켜내려 한다. 정병도 원장은 그렇게 숨을 거뒀다. 그러나 정작 재벌회장은 눈을 부릎뜨고 앉아 있을 뿐이다. 과연 그가 어느정도로 처벌 을 받게 될 것인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죄를 짓건 짓지않았건 전부 상대적 약자들만이 더 많은 것을 잃고 더 많은 피해를 입는다. 지를 지은자야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죄를 지은 상대적 강자들은 왜 아무렇지 않게 그 일을 무마시키는가? 그리고 잘 살아 나가는가? 거기에 한국의 모습이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니 이제 다들 알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런일은 비일비재하다. 재벌총수의 아들이 자동차에서 내려 누군가를 벽돌로 찍은 얘기들도 있고, 돈 혹은 권력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잘 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TV나 영화에서 본 수많은 사회지도층들의 모습은 마치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차도남'이 아니던가? 

나는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한국내의 부조리를 까발리고자 한 작품을 오랜만에 만나 보았다. 뭐 이전에도 없진 않았으나, 이전에 나온 대부분의 작품은 그저 '선과 악'이 필요했을 뿐이고, 싸인에서는 '선과 악'에서 '악'의 역할을 위해 한국의 더러운 모습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냥 더러운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스레 악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 눈을 크게 뜨고 봐야한다.

그래서 싸인은 더럽다. 더러운 한국을 담아내고 있으니 더러울 수 밖에 없다. 아! 물론 내가 한국이 더러운 나라이고 한국 별로라고 외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한국을 미치도록 사랑하니까. 그러나 그 한국안에 분명히 더럽고 추잡한 것들이 있고, 싸인은 그 부분을 속 시원하니 보여주고 있다. 


만약 싸인이라는 드라마를 그저 법의학 드라마로 보고 싶다면 그것도 훌륭한 선택이다. 

만약 싸인이라는 드라마를 잘 가공된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조화된 작품으로 보고 싶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선택이다.

그러나 만약에 싸인이라는 드라마를 그 안에 녹아있는 한국안의 더러움과 추잡함을 목도하는 수단으로서 보고 싶다면, 어쩌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한국의 어두운 모습을 바라볼때, 싸인안에 있던 모든 요소들이 더욱 더 강렬하게 그대에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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