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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문근영 - 화면을 먹는 파워 (2005년 글)

by 박평 2009. 3. 4.

 

나는 요즘 문근영을 보면 이 말 딱한마디만을 하고 싶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도대체 어떤 배우가 어떤 연기자가 나로 하여금 이러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있단 말인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다. 나외의 무척이나 많은 대중들이 그녀를 이런 눈빛으로 본다. 누군가가 내게 감독을 제안하면서 그 어떤 배우라도 캐스팅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면, 그리고 이번 영화가 실패하면 다시는 감독을 할 수 없다는 제안을 했다면 나는 주저않고 '문근영'이라는 배우를 캐스팅 할 것이다.

 

그녀가 대단한 것은 그녀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배우이기 때문이 아니다. 어린나이에 충무로 최고의 흥행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가을동화에서 문근영을 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았다. 내가 가을동화라는 작품을 후반부에 조금만 봤기 때문에 초반에나 나왔던 아역배우를 봤을리가 없었다. 그냥 신문에 '아역돌풍'정도로 나온 기사를 살짝 보았을 뿐이다. 문근영과 나의 관계는 그게 끝이었다. 내가 문근영에게 이렇게 큰 애정을 지니게 된것은 바로 장화홍련에서였다.

 

그 영화는 누가 뭐래도 '임수정의, 임수정을 위한, 임수정에 의한'영화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임수정'이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충실하게 '임수정'에게 그만큼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카메라도 임수정을 그렇게 잡는다. 이 영화에서 문근영은 철저하게 주변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도 문근영을 그렇게 잡는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를 더 잘 알것이다.)

 

문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저 구석진 곳에 '초점'도 맞지 않게 걸쳐있는 그녀가 자꾸 내 시선을 빼앗았다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이 어린나이의 배우가, 내용적으로 그리고 연출적으로 강하게 부각되는 '임수정'을 제치고 내 시선을 빼앗았다는 거다.

 

화면에 임수정과 문근영이 같이 나왔을 때도, 카메라는 임수정을 부각하지만 나는 '문근영'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놀라움이었다. 영화는 그저 단순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것으로 만들어 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에 따라 강약을 조절하고, 이미지를 심어야 한다.

 

영화문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는 이들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분명 감독은 자신이 주고자 하는 느낌을 관객에게 주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장치들을 심어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감독이 바라는 대로의 느낌을 받게끔 되는 것이다. 요즘에 들어서는 그러한 영화적 문법을 파괴하고 관객에게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되었는데, 장화홍련은 결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즉, 감독이 정확하게 연출하고 기획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런 작품안에서 부각받지도 못하면서 시선을 뺐는다? 이건 정말 굉장한 힘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억지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시선을 뺏으려고 영화속에서 혼자 튄다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그녀는 주어진 역할을 하면서 존재감 만으로 시선을 빼앗은 것이다. 아직 20대도 안된 어린 애가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읽은 감독의 인터뷰에서 '임수정'을 '심은하'에 비유했고, '문근영'은 그냥 칭찬을 해주었는데, 실제로 나는 그것에 불만족 했었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여자영화배우중에서 최고라고 볼 수 있는 '심은하'와 비견될 수 있는 건 '문근영'이었다. 그정도의 파워를 지닌 여자 배우가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닐 정도였으니까. 물론 심은하나 전도연의 아우라를 넘어선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애가 그러한 아우라 자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는 거다.

 

시간이 지나서 '어린신부'에서 그녀를 보았는데,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오직 문근영의 발전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난 이 영화에서 또 한번 아차 싶었는데, 감독은 문근영을 철저히 메인으로 배치하면서 그녀의 아우라를 빼버리는 전략을 사용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장화홍련'에서 나왔던 그녀의 배우로서의 아우라가 상당부분 희석된다는 것이다. 그대신 문근영은 '철저히 논다.' 영화안에서 그냥 뛰어 논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그녀는 300만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였고, 전폭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내가 어린신부를 보면서 기뻤던 건, 문근영이 애 답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장화홍련에서 보여줬던 그런 아우라는 그녀가 갖기엔 좀 이르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식스센스에서 할리조엘오스먼트가 보여줬던 아우라와 같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그런 아우라는 배우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역이 그런 아우라를 펼칠 수 있는 작품과 배역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된 틀에 갇혀서 결국 연기 자체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를 나는 몇번 봤다. 그런점에서 '어린신부'를 다음작품으로 고른 문근영의 선택은 매우 적절했다. 오히려 이렇게 함으로서 그녀의 아우라는 더 커지고 수명을 늘일 수 있다고 봤다. 최근작 '댄서의 순정'에서 그녀는 연변사투리를 구사하는데, 배우에게 있어서 '대사'의 중요성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연변사투리는 초반 잠깐 어색했으나 이내 충분히 받아 들여졌고, 역시 어린나이에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문근영의 이번 선택도 나는 굉장히 훌륭했다고 보는데, 어린신부에서 자신이 가진(소녀,학생)것으로 놀았다면, 이번에서는 다른 어떤 도구(춤)을 사용해서 논다. 그러니까 연기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 진다는 것이다. 어떤 기사에서는 '문근영'의 이미지를 너무 팔아먹었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식의 문근영의 이미지에 기댄 작품이 한 3편 정도는 더 만들어 져도 충분히 성공할 것이라고 본다.

 

물론 내가 이리 말하면 문근영이라는 배우가 그 이후에 꺼져 버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할 수도 있다. 절대 걱정말라. 문근영의 진짜는 그녀의 아우라에 있다. 나는 언제 그녀가 그녀의 아우라를 다시 터트릴 작품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아직은 대중이 원하지 않을테지만 난 그녀가 분명히 성인연기자로 터닝할 것이라고 믿고 그런 작품을 기대한다.

 

난 벌써 그녀가 눈물에 번진 마스카라에, 담배를 물면서, 속옷차림으로 울고 있는 장면이 상상된다. 대중은 동생 문근영을 잃겠지만 배우 문근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문근영이라는 배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귀엽다는 것도 아니고, 흥행성을 가졌다는 것도 아니고, 만인의 동생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녀는 화면을 먹는 배우다. 카메라에 클로즈업되지 않아도, 그저 화면 끝에 조금만 비추더라도 그녀는 관객의 시선을 빨아드린다. 그게 진짜다.

 

그러므로 다들 언젠가 동생 문근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 놓도록 하자. 그 정도로 동생 문근영은 매력적이지만, 내가 장담하건데, 배우 문근영은 숨이 막힐 정도이다.

 

ps)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없다. 좋은일 많이 하고 그런것은 참 착해서 좋지만 내가 진짜 관심있는건 배우 문근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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