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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토속적인 판타지 <헬퍼>

by 박평 2014. 10. 29.


만화에 있어서만큼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할 수가 없다. 미국과 더불어 규모 면에서 그리고 인지도 면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이 일본이다. 그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신화는 여전히 전 세계의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의 만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수많은 부산물이 이어지는 한, 일본만화의 왕좌는 굳건할 것이다.


한국만화에서 일본만화의 잔재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문화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묘사되는 경우도 있고, 일본 특유의 구도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일도 흔하다. 일본문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에게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가들에게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강풀이나 주호민, 이태호 같은 작가의 웹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그들만의 화풍을 가진 채로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헬퍼>의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헬퍼>에서는 의성어 조차도 토속적이다. '얼쑤!'와 같은 의성어를 통해서 흥을 돋운다. '탁! 콰악! 쿵!'과 같은 단순 의성어에서 벗어나 우리식의 의성어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토속의 느낌을 살리고, 작품 자체의 고의 색깔을 극대화한다. 틀에 박혀 있지 않은 방식이다.


<헬퍼>는 그 내용에서도 토속적인 것을 매우 강조한다. 가장 최신 에피소드에서는 도깨비와 돌하르방이 중요 캐릭터로 등장했고, 싸움의 기술도 '씨름'을 사용했다. '홍동백서'나 '패가망신'같은 우리 삶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심지어는 삼신할머니까지 등장한다. 저승이라는 배경 속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드러낸 판타지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울림은 더욱 크다. 한국적인 요소들이 판타지 안에서 구현됨으로써 토속이 주는 맛이 극대화됐다. 만약 역사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만화가 풀어나가면서 한국적인 요소를 가미했다면, 그것은 그저 당연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가 한국의 신화를 그리면서 동시에 판타지를 가미했고, 재미를 극대화 시켰다면, <헬퍼>는 완전한 퓨전이다. <신과 함께>와 달리 만화의 배경과 한국적인 요소 사이의 관련성은 매우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요소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헬퍼>의 토속성은 작품의 재미를 더욱 극대화 시켜주며, 역으로 속적인 것 자체를 환상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헬퍼>의 가치는 만화로서 지니고 있는 극화적인 부분, 예를 들어 흑백의 그림에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남색 등 몇 가지 색깔만을 사용해서 만화적 연출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나, 연출과 대사의 훌륭함, 예를 들어 '역시는 역시 역시군'이나 전투장면에서 '제로백'의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있는 다양한 상징들과 한국적인 요소의 사용은 이 작품을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을 만하다.


물론, 그림체의 독특함 때문에 처음에는 보기 힘든 작품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연출과 이야기가 점차 완벽해지고, 수많은 암시와 복선들이 회복되고, 동시에 우리의 흥을 돋우는 한국적 요소들이 가미되면서 <헬퍼>는 만화를 사랑하는 이라면 적어도 한번은 봐야 할 그런 작품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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