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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원의 끝, 미생은 어떻게 대한민국을 홀렸나?

by 박평 2013. 7. 19.



2012년 최고의 만화가 <미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2012년 대학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 부분 대통령상을 획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이야기는 끝이 났다. 물론 1년 후, 2014년 가을에 <미생>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2부를 기다리며, 1부가 가졌던 매력, 그리고 그것이 어째서 대한민국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만화란 본래 무척이나 영향력이 큰 대중문화였다. 어린 시절 공포의 외인구단을 얘기 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각시탈을 논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만화는 시대를 담고 있었고, 파급력이 큰 매체였다. 하지만 도서 대여점이라는 파격적인 시장 교란자의 등장 이후 만화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언제든지 싸게 볼 수 있는 '휘발성 매체'로 전락해 버렸다. 중요한 문제는 작가들이 만화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만화'라는 컨텐츠 자체를 사람들이 '가볍게'인식하도록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이제 '비트'같이 사회적인 이슈와 파급력을 만들어 내는 작품은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나마 웹툰의 창궐로 '만화'라는 컨텐츠는 다시 돈이 될 수도 있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히 '가볍게'보는 '놀이'로 격하 되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만화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미생>이 지닌 무게는 특별하다. <미생>은 가볍지 않은 작품이다. 그것이 단지 작품 자체의 분위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생>이 현재 사회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이를 통해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전에도 무거운 작품들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진솔히 비추고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공감하게 하고 사색하게 했던 작품은 많지 않았다. <미생>은 바로 그 지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현재를 살고 있는 셀러리맨들이 가장 진솔하다고 여기며 공감하는 만화라는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사실 <미생>의 현실성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성'이란 즉, 현실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차이를 '만화'라는 표현 매체를 통해 적절하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점을 고려해서 우리는 이 작품을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생>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이 작품과 자신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댓글로한글자 한글자 의견을 남기기도 한다. 실제 회사 생활과의 차이점을 말하기도 하고, 자신이 겪은 일과의 차이점을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의견은 이 작품이 '판타지'가 아님을 대중이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판타지'라면 댓글로 달리는 의견들은 이 작품의 현실인식 부재에 대한 조롱이나 실제가 어떠한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욕구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생>의 댓글들은 '공감'에 의한 댓글, 그리고 현실 인식에 의한 댓글이며, 그렇기에 '나는 이런 일도 있었어'라고 <미생>의 상황을 받아 들이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듯한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미생>이 독자들과 공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독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삶, 혹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사색'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과정은 곧 작품을 통해 삶에 대한 담론을 떠오르게 하며 <미생>이 지닌 작품성의 근간이 되고 있다.


<미생>이 지닌 또 하나의 강점은 바로 표현이다. 만화가에게 있어서 이야기를 어떤 표현으로 전달할 것인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지면이 아닌 컴퓨터 모니터와 스크롤 화면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시대의 변화는 그러한 고민을 더욱 깊게 하도록 만들었다.


윤태호 작가는 이미 이 부분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보인 적이 있다. <이끼>라는 작품을 통해서 그는 웹툰에서 그림을, 스크롤을, 색깔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허영만 화백은 '이끼를 보고 있자니 흑백만화는 생명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하여 색깔 공부를 열심히 해야 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윤태호작가는 웹툰에 빠르게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적응한 만화가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과거 지면만화 시대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웹툰에 맞게 컷을 나누고, 배치 하는데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미생에서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작품 하나가 하나의 미장센으로 보일 만큼 컷의 배치와 길이 조절을 완벽하게 해낸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 준 화는 <미생 92수>인데, 똑같은 크기의 직사각형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되 직사각형 안에서의 카메라 앵글을 다양하게 해서 역동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주고, 거기에 흑백과 칼라를 조화하여 살아 있는 것과 과거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을 나눈다. 거기에 순간 순간 '정사각형' 혹은 세로로 긴 '직사각형'을 배치해 인물을 강조하거나, 하나의 섹션 안에 있는 사건을 강조한다. <미생 92수>는 <미생>이 만화라는 매체, 특히 '웹툰'이라는 매체의 표현법을 한단계 성장시켰음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미생>은 담고 있는 이야기로, 그리고 그 연출력으로 '웹툰'이라는 매체의 수준을 한단계 향상시킨 수작이다. 특히, 이야기를 넘어선 '웹툰'자체의 연출력에 대해서는 더욱 더 큰 평가를 해야하는 작품이라고 보인다. 우리는 영화의 연출력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하면서도 웹툰의 연출력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웹툰, 만회에 대한 무의식적인 경하의식이 들어 있을 수 있다.) 매번 새로운 형태를 도입하려 하는 마음의 소리의 '조석'같은 작가에 대한 평가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포토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자리잡게한 역전 야매요리의 '정다정' 작가에 대한 평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새 '만화'에 대한 평가는 그냥 이야기와 그림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생>은 연출력이 지닌 힘을 확실히 보여주었고, 그 점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넘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미생>은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다. <미생>은 재미있는 웹툰이었으며 동시에 웹툰이 지닌 연출의 수준을 높였고, 이를 통해 웹툰 혹은 만화의 매체적 가치도 한 단계 높였다. 따라서 <미생>이라는 작품이 지닌 가치는 단지 작품으로서의 가치 그 이상일 것이며 웹툰에 있어서는 하나의 이정표로 남을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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