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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나면 몸서리치게 무서워 지는 영화 <변호인>

by 박평 2013. 12. 19.




가장 최소의 제작비로 가장 큰 이득을 내서 기네스북에 오른 영화가 있다. <블레어 윗치>다. 이 영화는 세 명의 영화학도가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실종됐는데, 이들이 찍었던 필름이 발견되었고, 그 필름을 상영한 것이다. 세 명의 영화학도들이 찍던 다큐멘터리는 '블레어 윗치'전설에 대한 것이었다. 


이 영화가 유명해진 것은, 엄청난 흥행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흥행을 이끌어 냈던 독특한 마케팅 수법 때문이었다. 이들은 '블레어 윗치'전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입소문을 내고 가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허구의 이야기를 실제로 믿게 되었고,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진 <블레어 윗치>를 보며 공포에 떨었다. 스크린에 나오고 있는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믿음은 무서운 장면 하나 없고, 심지어는 지루하기까지 한 이 작품을 진정으로 소름 끼치는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실제라는 믿음, 현실이라는 믿음의 힘이다.


<변호인>이 시작되면, 스크린은 관객에게 말한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만 허구라고. 이렇게 친절한 안전장치 덕분에 영화 <변호인>은 다행히 공포영화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영화의 시작에 '이 모든 것은 실제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까지만 말했다면 영화 보는 동안 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그 막대한 힘에 대한 공포 때문에 두 다리를 덜덜 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허구'라고 딱 찍어서 말해준 그 자막은 그래서 너무나 고마운 배려였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안에 불이 환해질 때, 내가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은 아주 빠르게 공포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허구'라고 친절히 방어막을 쳐줬던 영화가 끝나자 현실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은 영화 안에서 나왔던 장면들과 오버랩 되며 다리를 덜덜 떨게 한다. 실제라는 믿음, 현실이라는 믿음이 만들어 내는 공포다.


영화 안에서 대한민국의 신문과 방송은 믿을 수 없으며,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평범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가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고, 상식보다는 힘이, 정의보다는 권력이 세상의 주도권을 쥐고 마음대로 흔드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허구'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현실은 영화가 보여준 그 장면을 고스란히 그리고 여전히 지니고 있다. 그 형태만 달라졌을 뿐, '허구'라고 믿고 싶었던 것은 결국 실제다. 하물며 이미 기억 속의 허구로만 남아도 좋을 수십 년 전의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공포는 뿌리가 깊다.


그래서 <변호인>을 보고 나면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가진 독특함이며 동시에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고 공포를 느끼며 극장을 빠져나올 때, 불현듯 대학생들의 외침이 귓가에 들린다. '안녕하십니까?' 그 대답에 '안녕하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심지어는 '안녕하지 못하다'고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현실의 공포가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그래서 <변호인>은 무서운 영화다. 끝나고 나면 당신에게 현실의 공포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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