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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민주주의의 패션오브크라이스트, 남영동 1985

by 박평 2012. 11. 22.


나는 무교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 종교와 관련된 영화를 보면서 큰 감화를 받기는 쉽지 않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감탄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종교적인 무언가를 전달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교인 내가 진심으로 감동을 느꼈던 작품이 하나있다. 바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이다.


이 영화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의 그 고난을 가감없이 그렸다. 채찍으로 맞고 십자가를 끌고 가는 그 엄청난 고난을 그대로 묘사했다. 덕분에 이 영화는 R등급을 받았고, 영화를 보던 몇몇 기독교 신자들은 눈물을 흘리고 상영중에 기도를하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믿는 신이 겪는 고난을 그대로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뜨거운 '정화'의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이 작품이 예수의 기적을 다루지 않고 예수의 고난을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때로는 기적을 부리는 모습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얻은 처절한 고통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더욱 큰 기적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남영동1985'는 그런 영화이다. 이 영화는 박정희, 전두환의 군부 독재가 만연한 시기에 민주주의를 꿈꾸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남자가 무엇을 성취했는가, 그 남자가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얼마나 기여했는가는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고난을 겪었는지만을 묘사할 뿐이다.


남영동1985에서 묘사되는 고문의 장면은 끔찍하다. 그리고 고통스럽다. 그것은 지독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된다. 정지영 감독은 이 고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지만 그 근본에는 고문, 그 자체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고문씬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장면은 고춧물을 얼굴에 들이 붓는 '롱테이크 장면'이다. 카메라는 오래동안 그 장면을 비추고, 보는 이는 그 장면에서 숨이 막힐 듯한 고통을 함께 경험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김근태'전 장관님의 고난을 묘사한다. 마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그리고 그렇게 '민주주의'에 대한 '정화'를 일으킨다.


차이가 있다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보십시요. 제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있나이다'고 말하며 고난을 감내 하는 것에 비해, '김근태'전 장관님은 수없이 고뇌하고 또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신이 되었지만, '김근태'전 장관님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끝에, 예수는 부활한다. 그 고통과 고난의 해소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그런데 남영동1985의 마지막에는 해소가 없고, 끝이 없다. 시원하지 않다. 영화가 이렇게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이 끝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당시 민주주의를 고문했던 군부독재세력이 그대로 남아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이 현실이 그런 마지막을 강요 했을 수도 있다. 이 덕분에 '남영동1985'은 신화가 아닌 처절한 에세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남영동1985는 '성스럽다.' '김근태'전 장관님은 그렇게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남았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영웅의 활약보다 영웅의 고뇌가 우리에게 더 깊은 감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남영동1985는 힘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이라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봐야 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꼭 봐야할 것이다. 


Ps) 극중 김종태를 '김근태'전 장관이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이름을 바꾸었지만 김종태는 '김근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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