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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야하지 않은 결핍과 욕망의 앙상블

by 박평 2012. 5. 10.


은교는 '자극적 설정'으로 관심을 끈 영화이다. '노인과 17세 소녀와의 사랑이야기'라는 설정은 파격적인 '노출'이라는 정보와 합쳐져 상당히 많은 예비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그러나 이 영화, 보고 나면 자극적인 설정도 노출도 남지 않는다. 오히려 여운이 남는다.


그 여운이 어디에서 오는지, 은교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논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는 사람들마다 다른 것을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들마다 받는 느낌이 다르니 함부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원작'을 빌려와 이야기 하기도 쉽지 않다. 영화를 봤다고 해서 책 '은교'를 읽은 것은 아니라는 박범신 작가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화로서 바라봐야 했다. 쉽지않은 일이다. 누가 해석해도 논란이 남을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지만 문학의 본성을 지니고 있으니 이 부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나름의 감상을 전하는 것이 이 작품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전부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세 사람이 있다. 자신의 시가 교과서에 실릴 만큼, 기념관이 세워질 만큼 대단한 시인 이적요가 있고, 이적요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서지우, 이적요와 서지우 사이에 들어온 은교가 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결핍을 느낀다. 그 결핍은 상대를 통해서 구체화 된다.


이적요는 서지우에게 젊음의 결핍을 느낀다. 이적요가 쓴 소설 '심장'을 서지우에게 준 것은 서지우를 등단시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치기를 서지우를 통해 내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적요는 나이를 통해 늙기도 했지만, 위치와 권위에 의해서 늙기도 했다.

서지우는 이적요에게 애정의 결핍을 느낀다. 아무리 노력해도 서지우는 이적요가 될 수 없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승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재능도, 스승을 뛰어넘을 재능도 없다. 따라서 그는 헌신한다. 오직 그 방법 만이 그가 스승으로부터 존재감을 부여 받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은교는 외롭다. 집에가면 폭력을 휘두르는 어머니가 있다. 불쌍하지만 가혹한 애증이 교차하는 그런 존재다. 그런 존재로 부터 사랑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의 결핍은 외로움이다. 그녀는 이 외로움의 결핍을 '이적요'에게서 풀려 하지만 '이적요'에게서도 결핍을 느낀다.


이렇게 서로에게 결핍을 느끼고 있는 이들은 다시 다른 이를 통해 결핍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한다.


이적요는 은교를 통해 젊어진다. 노시인은 은교를 통해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그렇게 그의 결핍은 채워진다.

서지우는 은교를 취한다. 이를 통해 스승을 뛰어넘는다. 스승에게 받지 못한 애정, 그 외로움은 은교를 취함으로서 채워진다.

은교는 서지우와 이적요를 취한다. 어머니로 부터 맞고 도망온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이적요'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서지우가 발표한 것으로 오해한 단편 소설 '은교'를 통해서도 그녀는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은교에게 사랑의 대상은 모호하다. '이적요'에게서 느끼는 감정도 있지만 소설 을 통해 '서지우'에게 받은 '감정'도 있었다. 결국 그녀는 둘 모두를 취한다. '이적요'에게는 '이마에 뽀뽀'를 하고 '서지우'와는 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모두는 결핍을 해소한다. 그리고 다시 이들은 충돌해 버린다.


'은교'를 취한 '서지우'를 보면서 '이적요'는 다시 늙어 버린다. '서지우'를 통해 보던 자신의 결핍은 '은교'로 인해 채워졌지만 다시 '서지우'를 통해 산산조각난다.

자신을 죽이려한 '이적요'를 보면서 '서지우'는 분노를 느낀다. '이적요'에게 인정받지 못하던 '서지우'는 '은교'를 취함으로서 스승을 앞질렀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스승에게 버림받은 것을 알게 된다.

'은교'는 '서지우'를 죽인 '이적요'에 의해 다시 애정의 결핍을 느낀다. '이적요'와 '서지우'에 의해서 '애정'을 느낀 '은교'는 '이적요'에 의해 애정의 큰 축인 '서지우'를 잃는다. 


이 3명은 크게 결핍되어 있고, 서로에게 구원을 찾고 다시 결핍한다. 영화 '은교'는 바로 이 3명의 이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그리고 이 지독한 3 명의 앙상블은 가슴을 에리게 만든다. 이들이 지닌 결핍이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결핍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영화가 끝난 후에 아련함이 남는 사람이라면 바로 자신도 그러한 결핍의 경험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은교에는 그래서 인간에 대한 성찰이 있다. 이적요가 소설 '심장'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대중적인 책이지만 그 안에 인간에 대한 성찰이 있다고 말한 것은 어쩌면 은교라는 작품에 대한 자평일지도 모른다. 


'은교'는 비록 '선정성'으로 화제를 얻었지만 전혀 '선정적'이지 않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작품의 선정성은 인간과 욕망, 결핍에 대해 진지하게 훑어 보고있는 시선에 의해 그저 하나의 '과정'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선정성'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참 재미없는 영화일 것이다. 오히려 화면으로 보여지는 하나의 문학을 보고 싶다면, 매우 훌륭한 작품임에 분명하다. 관객 모두에게 다른 영화로 받아들여 질 것이기 때문이다. 별이 다 같은 별이 아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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