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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여성부, 모든 노래를 유해매체로 정하라.

by 박평 2011. 8. 23.

나는 뽀뽀가 좋다. 이 여자를 봐도 뽀뽀하고 싶고, 저 여자를 봐도 뽀뽀하고 싶다. 어릴적 죽마고우와도 뽀뽀하고 싶다. 친한 형과도 뽀뽀하고 싶고, 어린 아이들을 봐도 뽀뽀하고 싶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이상하게 볼 것이 분명하다. 변태로 보거나 정신이상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의 노래 때문이다. 어렸을 적 부터 들어왔던 바로 그 노래가 나를 변하게 만든 원흉이다. 그 노래의 제목은 '뽀뽀뽀'이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뽀뽀뽀 / 우리는 귀염둥이 뽀뽀뽀 친구 / 뽀뽀뽀 뽀뽀뽀 뽀뽀뽀 친구

그렇다. 나는 이렇게 세뇌당한 것이다. 인사할 때 '뽀뽀'하는 것이고, '뽀뽀'하면 귀염둥이가 되는 것이다. 이 가사는 나를 아무나하고 뽀뽀하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 인생 최고의 유해매체는 바로 '뽀뽀뽀'다.

1996년 마침내 사전 심의제도가 폐지되었다. 이전 까지 모든 노래는 미리 심의를 받아야만 했다. 가사에 불건전한 내용이 있다면 심의를 받을 수 없었고 앨범 발매 자체가 불가능 했다. 그 불건전한 내용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방도가 없다. 확실한건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이라는 곡이 사전 심의에 걸려 경음악으로만 앨범에 실렸고, 이에 반발한 팬들의 조직적인 대응 덕분에 마침내 사전심의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1년 현재의 대한민국은 또 다른 심의제도를 이용해 유해매채를 걸러내고 있다. 사후심의제도이다. 일단 발매된 곡을 발매이후에 심의하여 유해매채물로 선정하고 유해매채물로 선정된 음악의 경우에는 청소년 판매및 저녁 10이전 방송을 제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심의제도 자체에 대해서 욕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나 심각한 욕설이 포함된 음반은 당연히 청소년이 이용할 수 없도록 금지되어야 한다. 예전처럼 아예 발매 금지를 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심의제도 자체는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심의의 기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유해매채물 판정을 받은 10cm의 아메리카노 같은 경우에는 '이쁜 여자와 담배피고 차마실 때, 다른 여자와 입맞추고 담배필때'가 건전한 이성교제를 왜곡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쁜 여자와 담배피고 차마실 때가 도대체 건전한 이성교제와 무슨 연관이 있는건지, 다른여자와 키스하고 담배피는 것은 또 왜 불건전한지 납득하기가 쉽진않다. 그리고 이것이 과연 청소년 유해매채물로 선정되어야 할 수준인지 또한 명확하지 않다.

이쁜여자와 담배피면 불건전한건가? 아니면 차마신게 불건전한건가? 아니면 담배피고 차마신게 불건전한건가? 아니면 이쁜여자가 불건전한건가? 둘은 정말 이성교제를 하고 있는 걸까? 그냥 아는 이쁜여자와 담배피고 차 마신건 아닐까?

물론 가사 중간에 나오는 '여자친구와 싸우고서 바람필 때'라는 부분은 조금 불건전하다. 바람을 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본 드라마에서는 결혼한 사람이 바람을 피고 있었다. 이건 바람보다 더 무섭디는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이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이 수준이 방송 되고 있으니 음악에서도 허용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의적 판단이 심의를 하는데 있어서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님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자의적으로 판단을 하면 한도 끝도 없다. 위에 나는 스스로 변태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뽀뽀뽀'를 유해매체로 만들어 버렸다. 즉, 자의적 판단에 의한 심의는 말그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심의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아무런 기준도 없이 그저 일부의 생각으로만 유해성을 판단해 버린다면 그때 부터 청소년들을 위한 심의는 문화 탄압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정확한 규정없는 처벌이다. 규정이 있다면 언제 처벌을 받을지 알기 때문에 그 규정을 잘 피해나가면 된다. 그러나 규정이 없으면 그때부터 언제 처벌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미리 제한하고 자신의 생각을 미리 잘라내게 된다. 그렇게 눈치만 보게 되는 것이다. 창의성은 발휘 될 수 없다.

어떤 노래는 술을 그만 마시자 하는데 유해매채가 되고 어떤 노래는 맨날 술만 마시는 데도 유해매채물이 되지 않는다. 이건 심의가 아니라 여성부라는 절대 권력에 알아서 고개 숙이라는 무언의 협박과 같다. 여성부에 잘 보여서 앨범이 나오고 나서 한참후에 심의가 되고 유해매채물에 지정되면 가수는 충분히 방송활동을 하고 앨범을 판매하기 때문에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에는 앨범을 발매하자 유해매채물로 지정되고 애써 만든 앨범을 폐기 시켜야 할 수도 있다. 이건 여성부에 잘보이기 특집을 마련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차라리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노래는 유해매채물로 정한다고 해 버리면 깔끔하다. 그때부터는 술을 대신할 여러 단어들이나 표현을 찾으면 된다. '나 완전이 좆됐어'를 '나 완전히 새됐어'로 바꿨던 싸이의 '새'처럼 차라리 이런 확실한 제한을 둔다면 문화적 창의력이 발휘될 공간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밑도 끝도 없는 자의적 판단은 창작자와 창작물을 즐기는 대중들 모두를 기만하는 행위밖에 될 수 없다.

물론 이 경우에도 부작용은 있다. 만약 술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금주 캠페인 노래를 만든다고 치자. 여기에 '술'이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순간 바로 심의대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술 마시면 안되요'라고 말하자마자 금지곡으로 선정될 것이다. 현재 여성부가 술이 들어간 모든 노래들을 차례차레로 유해매채로 지정하고 있는 것에 대중의 반발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즉, 현재 여성부의 심의는 '앞뒤 문맥 따지지 않고 특정 단어 들어가면 무조건 유해매채 선정' 더하기 '이건 내가 봤을 때 해로우니 유매해채 선정'이라는 2가지 얼토당토한 기준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여성부는 심의의원이 누구인지조차 공개하고 있지 않다. 만약 그들이 정당한 방식으로 완전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의견이 아니라 어느정도 합리적이고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기준을 가지고 유해매채물을 선정한다면 심의의원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과연 전문가들인지, 문화를 잘 이해하는 사람인지 우리는 의심을 갖고 판단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대체 왜 여성부가 이일을 하는지 도통 알 방법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무엇을 하는것인가? 문화는 문화로서 대하고 문화로서 판단해야 한다. 이 작업을 문화체육광광부가 맡아서 해야 한다. 그리고 합리적 기준을 제정하고 그 기준에 맡게끔 해야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은 심각한 자기검열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고, 더불어 많은 기획사들은 '여성부 심의의원'님들을 찾아 로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노래는 약 2달 후에 심의해 주세요.' 라고 말이다.

심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단어하나에 집착한 유해매채물 선정과 자의적 판단에 의한 유해매채물 선정은 위험하다. 단어를 기준으로 하면 '금연송', '금주송'도 다 유해매채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자의적으로 판단까지 추가되면 '뽀뽀뽀'를 포함한 모든 노래를 유해매채물로 만들어야 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기준은 물론 힘들겠지만 지금처럼 모든 이들이 말도 안된다는 심의는 분명히 개선될 요지가 있다. 이런 문제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방식의 심의를 해 나간다면 한국의 문화 발전에 매우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에, 조속한 시정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참고로, '뽀뽀뽀' 얘기를 진짜로 믿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본인은 변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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