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엔터테인먼트

김연아의 금매달, 눈물, 그리고 환호

by 박평 2010. 2. 26.


언제부터인가 김연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수많은 광고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내가 알고 있는 많은 남자와 여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것도 거의 호의성 넘치는 말만 오르내리는 그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그녀의 위상은 각별했다.

나는 김연아의 경기를 이번에 처음으로 봤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김연아에 대한 관심이 지독하게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김연아 이전에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겨스케이팅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결코 몰랐다. 한켠에는 아직도 의심이 있다. 당신들은 피겨를 사랑하는가 김연아를 사랑하는가?

피겨에 대한 큰 관심안에서 김연아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면, 나는 그것을 함께 즐기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대중은 관심은 피겨가 아닌 김연아에 대한 독자적인 것이었고, 나는 이러한 관심이 그녀를 잡아먹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몇번의 슬럼프만 있어도 그녀의 지지자는 냉혹하게 그녀를 떠날 것이고, 몇번의 실수만 가지고도 그녀를 오히려 크게 비난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물론 피겨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채.

그래서인지 나는 그녀의 경기를 보는것이 꽤 불편했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그녀에게 쏟아진 엄청난 관심이 더욱 걱정됐던 것 같다. 이번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굉장히 나쁘게 상황이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기대를 실망시킨만큼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협회와의 갈등에 대해서 들었는데, 그 부분에서도 문제가 생길수 있다고 여겼다. (실제 갈등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따라서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경기가 있던날 지하철안에서 들려오던 제임스 본드의 음악을 듣고 나는 더욱 걱정되었다. 정말이지 이곳저곳의 핸드폰에서 하나같이 울려퍼지던 본드 노래는 '김연아'에 대한 광적 집착이 형상황 되는 것 같다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모든 이들이 김연아의 가장 큰 적은 그녀 자신과, 대한민국에서 쏟아지고 있는 과도한 기대와 관심이라고 말했을 정도였을까.

나는 피겨 경기를 쇼트와 프리로 나눠서 하는지도 몰랐다. 그 차이도 모르고 있다. 단지 쇼트가 끝났고 김연아가 잘했다고 해서 모든게 끝난 줄 알고 경기를 찾아보았다. 처음 보는 경기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던건 당연하고, 그녀에게 쏟아지는 광적인 기대와 관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아직은 소녀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니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했다. 그녀의 경기를 지켜보고 그것에 감사하기보다는 뭔가를 따오고 가져오라는 것이 관심의 주된 원인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했다.

프리를 마치고, 그녀의 눈물에서 나는 그녀가 얼마나 큰 부담감을 안고 있었는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쇼트에서 마오의 높은 점수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경기를 해낸 김연아를 대단하다 대단하다 말을 했었다. 그러나 김연아의 대단함은, 그러한 감정을 프리경기가 끝날때까지 감추었다는 사실이다. 쇼트에서 높은 점수가 나왔기 때문에 더욱 심했을 압박감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을 것이다. 실수하지만 않으면 자신의 어께에 짊어진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곧 실수 한방에 모든 것이 날아 간다는 극단적 불안감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꾹 참아내고 결국 자신의 경기를 마쳤다.

그런점에서 그녀의 눈물은 잘했다의 눈물보다는 실수하지 않았다에서 오는 눈물일 것이다. 자신이 준비한 것은 실수없이 보여줬다는 것에서 나오는 눈물, 그동안의 불안감이 표출된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 눈물은 나 잘했어요! 와 같은 감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불안과 걱정과 힘듦이 모두 섞인, 마무리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점수가 나오는 순간 그녀는 마침내 미소지을 수 있었다.


그녀는 국민의 기대대로 금매달을 따 주었고, 세계기록을 갈아 치웠다. 다 이룬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녀에 대한 기대를 접는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본 경기였지만 피겨가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강한 스포츠인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는 그녀가 매달을 따고, 기록을 갱신하고 이런 것보다는 그저 그녀의 경기를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부담감도 이겨내고 압박감도 이겨내고 그녀의 경기를 해 냈다. 김연아 라는 사람이 '피겨'라는 어떤 종목을 넘어, 사람 그자체로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아마 대한민국은 한동안 연아앓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단 너무 집착만 하지 말도록 하자. 그녀가 웃으면서 경기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마도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