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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모두에게 승리를 안겨준 무한도전.

by 박평 2010. 1. 31.

이제 무한도전을 단순한 예능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점점 고민이 된다. 물론 그 바탕은 예능이다. 남을 웃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의 뿌리이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그 뿌리를 웃음에 두고 있을 뿐, 그저 예능이라고 한정짓기에는 그 울림이 너무나 크다.


무한도전은 길게 만들어진 '로베리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다고 느껴진다. 웃음이 있지만 그 안에 눈물이 있고, 그리고 그모든 것을 감동이 뒤덮는다. 때로는 그저 웃길 뿐이고 때로는 너무나 감동코드라 예능이면 예능다우라고 비난을 받지만, 이쪽이던 저쪽이던 시청자는 분명 가슴속에 큰 무언가를 얻게 된다. 이것이 2시간 짜리 영화가 아니라 무려 수년간 지속되어지는 TV 프로그램에서 지속되고 있따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복싱은 그렇다. 주먹과 주먹이 맞닿는 경기다. 역도가 혼자와의 고독한 싸움이라면, 복싱은 사람과 사람의 고독한 싸움이다. 둘다 인간의 영혼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건 승리가 아니라, 나의 마음일 뿐이다.

기존의 대한민국은 스포츠에서 만큼은 일본에게 질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의지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 또한 어떻게 발현됐는지를 말할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의지를 지니고 살아왔다. 그래서 모든 대결의 승자는 한국사람이어야 했고, 우리는 사람보다는 나라를 스포츠의 주체로 봐왔다.

무한도전은 사람을 봤다. 그 안에서 사람을 보고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사람을 보여주었다. 권투라는 스포츠가 그 소재이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권투가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무한도전의 기민함은 승자와 패자를 발표하는 순간을 아예 없앰으로서, 우리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승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승자독식의 사회, 승자만이 중요한 사회에서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평균이하의 남자들이 모여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무한도전의 컨셉, 그 자체를 다시한번 보여주었다. 만약 이 작품을 보고 감동 받았다면 아직 우리 가슴속에 승리보다는 과정이, 승자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인간본연의 위대함이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무한도전은 그렇게 패자없는 모두가 승자인 쑈를 만들어 냈다. 츠바사도 최현미 선수도, 무한도전 팀도, 무한도전팀의 부름에 혼쾌히 응해준, 원투, 케이윌, 브아걸, 바다도, 선수의 부모와 가족도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관계자도, 관람객도 그리고 시청자에 이르기 까지, 한 1시간의 프로그램이 줄 수 있는 그 한계를 받게 되었다. 사람이 사람의 이야기야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이제는 무한도전을 단순한 예능이라고 부를 수 없다. 바탕은 예능임에 분명하지만, 무한도전은 이제 하나의 새로운 장르이거나 혹은 명작, 고전이라고 불리워야 할 것 같다. '인생은 아름다워'같은 작품이 '채플린'의 수많은 작품이 오랜시간 고전으로 남아 있는 것 처럼, 그리고 그것들을 단순한 코미디라 부를 수 없는 것처럼, 무한도전 또한 무한도전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고전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예능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고 익혀야할 고전으로 말이다.


가슴이 뜨겁다. 화려하고 격렬했던 권투시합에 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지는 모르겠다. 아직, 스키점프, 봅슬레이팀에게도 환호가 지속되고 있는지,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무한도전은 불을 지펴 왔다. 오피니언 리더이자, 고전으로서 그리고 시청자들을 웃고 울리는 완소 프로그램으로서, 무한도전은 계속 될 것이라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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