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엔터테인먼트

엄정화 - 가수! 아니 배우! (2005년 글)

by 박평 2009. 2. 13.

엄정화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 모든 여자 연예인을 통틀어 엄정화 만큼 오랜기간 동안 엄정화 만큼의 다양한 장르에서 엄정화 만큼의 활약을 펼치면서 엄정화만큼의 인기를 유지한 연예인이 있던가?

 

기본적으로 모든 연예계는 딱 두가지 장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수와 배우. 즉, 노래 부르는 사람과 연기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장르에서 일가를 이룬 연예인은 대한민국에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이런 연예인을 딱 두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임창정과 엄정화.

 

이들은 노래에서도, 그리고 영기에서도 A급이다. 그것도 특 A급. 임창정은 나중에 분명 한번 파헤쳐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니, 오늘은 엄정화를 살펴보자.

 

엄정화가 나에게 인식된 것은, 눈동자라는 노래를 통해서이다. 이게 1993년이다. 이 앨범을 통해서 엄정화는 가수로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93년이면 12년 전이니 내가 13살때였다. 이때당시는 그다지 영상에 관심을 두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를 TV나 스크린에서 볼리가 만무했다.

 

단지 나의 고모님께서 해주신 말씀에 의하면, 일요일 아침에 방송됐던 '좋은친구들'에서 엄정화가 나와서 마무리 노래를 했는데, 너무 이쁘고 너무 잘하더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그렇게 즐겁게 노는 가수를 처음 봤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배반의 장미를 통해서 진짜 왕대박!을 이뤄내더니 포이즌, 몰라 등등등등, 가수로는 더할나위없는 최고의 시기를 보낸다. 물론 그 시기동안 그녀의 프로필을 검색해보면 연기를 아예 안한 것은 아니고, TV쪽에 얼굴을 가끔 비추긴 했다. 하지만 TV를 잘 안보는 나의 특성상, 전혀 기억이 없다.

 

나는 '몰라'가 뜨고 있을 당시, 청담동의 한 와인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밤 12시가 넘은 시간, 퇴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이상한 외계인같은 것이 쫄래쫄래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무서웠는데, 알고 보니 엄정화였다. 아마도 바로 옆에 Mnet이 있었기 때문에 무대의상 그대로 그쪽으로 온것이 아닌가 싶었다. (내 기억으론 그때 우리 건문 위층에 있었던 디자인업체의 디자이너와 사귀고 있었던 것 같다.)

 

엄정하를 실제로 보면서 느낀 감정은 '생각보다 너무 작다'는 것이었고, 걸음걸이가 '껄렁'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대화장은 생각보다 무섭다'라는 것이었다. (몰라가 좀 사이버틱한 화장이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엄정화 화장 두껍다라는 얘기가 참으로 많이 나왔고, 항상 그렇듯이 별 중요치 않은 문제인 그런 것을 가지고 (화장이 두껍던 아니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참 말도많이 했다.

 

어쨌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정화'라는 이름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가수'그리고 '스타'였다는 것이다. '배우'라는 인식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배우 데뷔가 오히려 더 빨랐다. 1집 눈동자 보다 빠른 1992년(어떤 기록은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영화로 데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화는 실패 했고, 그런 연유로 영화계에 다시 발 붙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때 영화계의 분위기 또한 실패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그리고 연출했던 감독이 다시 영화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 같다.

 

그런 그녀가 다시 배우로 돌아온 것은 언제일까? 2001년이다. 그녀가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기에는 근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긴 그것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의 연출자인 '유하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데뷔작이후 10년만에 그녀는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복귀한다. 그리고 유하감독도 함께다.

 


 

'결혼이 미친짓이다'는 '야하다' 그러니까 성적인 코드가 많이 들어가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이미지 소비가 심한 '가수'로의 활동이 길었고, 그 기본에는 여자연예인이라면 항상 빠지지 않는 '섹시'의 요소가 있었으며, '섹시'의 요소에는 항상 '싸구려'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상황인데, 영화마저 '성'적인 측면이 부각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잘 못하면 엄정화를 패대기 칠 수도 있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커리어'를 부셨을 수도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유하감독'이 보여준 내공, 엄정화가 보여준 내공은 그런 위기를 기회로 바꿔 주었다. 마치 10년동안 쌓여왔던 내공,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보여준 쾌거라 할까? (물론 야하긴 해도 생각보다 노출이 적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엄정화는 '성'적인 코드를 내뿜지만 싸지 않았고, 그녀의 연기는 '예쁘게' 포장하기 급급한 여자배우의 한계를 그냥 깨 버렸다. 예쁜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 나는 그 영특함이 좋았다.

 

물론 엄정화는 이쁜 척을 많이 하는 배우이다. 그런데 왜 이 배우 밉지 않은가? 그것은 철저히 영화안에 묻혀졌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지만 엄정화는 노련하고, 영특하다. 허용된 범위안에서만 이쁜 척을 한다. 즉, 영화를 대할때, 자기보다는 영화를 먼저로 친다는 점이다. 그 점 존경한다.

 

어쨌든 결혼은, 미친짓이다가 순항을 해 주면서 엄정화의 제 2의 전성기는 다시 시작된다. 싱글즈에서 친한친구와의 실수로 하룻밤 때문에 생긴 애를 쿨하게 받아 넘기는 멋쟁이 여성을 표현해 내더니 김주혁과 공연한 '홍반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당찬 치과의사로 열연한다. (홍반장 바로전에 아내라는 드라마를 했었는데 물론 보지는 않았지만 기존 엄정화가 가지고 있던 톡톡튀는 이미지와는 다른 연기를 해서 호평을 받았던 정도의 정보는 수집해 놓고 있다.)

 

다음에는 바로 '내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다. 여기서의 엄정화, 황정민과 짝을 이뤄 역시 통통튀는 정신과의사역을 표현해 냈다. 순진한 황정민을 그렇게 리드해 나갈 수 있는 배역을 엄정화 아니면 누가 해내리?

 

이상하게 엄정화는 여성들에게 그녀를 보면서 카타르 시스를 느끼게 해주는데, 워낙 당당하고 통통튀는 모습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내생에'를 보면서 느낀 또 한가지 큰 이유가 있다.

 

'내생에'에서 그녀는 당당하게 속옷만 입고 2번 정도 등장하는데, 눈이 훽 돌아갈 정도의 멋진 몸매도 아닌 것이, 나름대로 구여분 몸매를 당당하게 내 놓는 다는 것이다. 물론 몇몇은 엄정화가 너무 벗는다고 싸구려라고 말을 할지 모른다.(어떤 짓을 해도 씹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놔두는 게 상책.) 하지만 내가 보면서 느낀 감정은, 그 몸매에서 '전지현'처럼 완전히 '뻑인 간다, 뻑이가'정도의 감정을 불러올 수도 없고, 그냥 '나도 저정도는 돼'라는 인식을 여자에게 불러 오겠구나 하는 점이다.

 

즉, 엄정화는 자기가 하지 못하는 쿨함을 표현해서 카타르 시스를 줌과 동시에, 맞닿을 수 있는 거리의 모습을 허물없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당당하다. '뭐 이정도면 훌륭하지!'정도의 기운을 항상 뿜어 준다는 것이다. 여자는 그래서 '엄정화'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물론 엄정화는 '내 생에'에서 노출씬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실제 그녀는 기존 영화안에서 노출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남자인 나로서는 '엄정화'가 고마운 것이 '귀여우면서, 톡톡튀는 맛도 있고, 가끔 속옷만 입고 나오는 씬도 있고' 안고마워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갑자기 얘기가 취향쪽으로 좀 샜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서 엄정화는 배우이면서 일종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그녀의 이 '아이콘'화는 그것외에 다른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물론 그녀가 아직 다작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뭐라 미리 말할 수는 없다. 그동안은 그러한 이미지를 여러 모습으로 가공해서 보여주는 것이 엄정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순간이 되면 배우는 자신의 모습을 깨야 하는 시점이 온다.

 

그리고 기쁘게도, 이미 엄정화는 그러한 것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오로라 공주'이다. '방은진'의 감독 데뷔작이라서 기대하는 것도 있지만, 엄정화의 새로운 연기를 볼 수 있을까봐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물론 엄정화의 '아이콘'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런 식으로만 인식되어왔지만, 난 엄정화의 연기폭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결론을 내렸고, (엄정화식 아이콘에 각 영화마다의 감정을 추가시키는 내공은 단편적인 아이콘의 소비에 모든 걸 맡기는 배우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아내에서의 선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 영화 또한 잘 해낼 거라 믿는다. (단지 배역이 '쌔면' 역효과가 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조금 걱정도 한다.)

 

오로라 공주 개봉과 더불어 이번년 말이나 내년 초쯤해서 9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니, 연예계는 다시한번 엄정하 천국이 될 듯도 싶다.

 

이렇게 오랜 시간, 연예계의 가장 큰 두 주축장르에서, 이렇게 많은 사랑을, 이렇게 꾸준히 받는 여자 연예인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나는 희박하다고 본다. 하긴 모르겠다. 엄정화 처럼 하루하루를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 수도 있는거니까.

 

개인적으로는 그녀 같은 배우가, 가수가, 연예인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