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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와 성동일의 대단했던 쌍끌이 연기

by 박평 2013. 11. 30.




삼풍백화점 사고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그 사건은 사건 자체로 아련하고 슬프다. 그래서 삼풍백화점 사고를 다룬 <응답하라 1994> 12화가 슬플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때로 소재는 소재 자체로 충분하니까. 그런데 <응답하라 1994> 12화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삼풍백화점'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두 인물 '정우'와 '성동일'이었다.


'쓰레기(정우)'는 의사로서 삼풍백화점 부상자들을 치료해야 하고, 또 한 환자보호자와 관계를 맺고 있긴 하지만, 성나정, 칠봉이처럼 직접적으로 삼풍백화점과 연관되지는 않았다. '성동일(성동일)'은 심지어 삼풍백화점 사고와는 전혀 관계없는 역할이었다. 그저 친한 친구를 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역할이었다.


삼풍백화점붕괴라는 비극적 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빛났던 것이, 소재에 직접적 관련성이 없던 두 인물이라는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둘은 자신들의 연기로 소재의 거대함을 뚫고, 12화를 단지 소재 하나에 매몰되지 않도록 했다. 작품은 풍성해졌고, 감정은 커졌으며, 슬픔은 배가 됐다. 


12화 초반에서 '쓰레기'의 성격이 전에 비해 과하게 귀여워지고, 조금 과하게 해맑아진 것은 사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뒤에 나올 그의 아련한 눈물 연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가볍고 귀여운 모습은 뒤의 눈물 연기의 감정을 극대화 시켰으며, 이 연기를 통해 정우라는 배우가 감정선 조절에 얼마나 능한지를 보여주었다. 즐거울 때의 연기를 과하게 치고, 눈물을 쏙 빼놓을 수 있는 장면에서 감정을 잔잔하게 마무리함으로서 오히려 슬픔의 강도는 깊어졌다. 연출의 디렉팅인지, 작가의 극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우는 이 같은 감정선을 정확하게 연기했다.


성동일은 먼저 간 친구의 영정에서 눈물을 쏟아낸다. 처음 면회하기 전에 걱정하던 그의 눈빛,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 친구와 해맑게 웃으면 농담을 나누는 모습, 친구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 난 후에, 그 친구와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나보다 네가 더 오래 살 거'라며 애써 슬픔을 녹이는 연기까지, 즐거움은 과장하고, 불안감과 안타까움은 미소 뒤에 살짝 숨기는 성동일 연기의 진수가 이어졌다. 특히 웃으면서도 순간순간 비치는 불안한 눈빛 연기는 마치 교과서를 보는 것처럼 정확했고, 시청자에게 감정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짚어 줬다. 앞의 그런 세세한 연기는 결국, 친구의 영정 앞에서 폭발할 때, 그 감정의 크기를 증폭시켰고, 이를 통해 친구를 잃은 이의 슬픔과 친구에 대한 원망이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시작은 과했으나, 뒤에서 감정을 차분히 정리했던 '정우'와 처음에는 슬픔을 숨기다가 뒤에서 슬픔을 폭발시켰던 '성동일'의 연기가 적절하게 교차 되면서, <응답하라 1994>는 한 회 안에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러나 충분히 폭발력 있는 슬픔을 만들어 냈다. 


'정우'와 '성동일'이라는 연기력 출중한 배우들 덕분에, 소재만으로 가득 찰 수 있었던 에피소드가 풍성해졌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극을 얼마나 다채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응답하라 1994의 화룡점정은 역시 연기자다. 이 감정, 연기를 못하면 이 정도로 강하게 전달되기는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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