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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베를린, 액션영화? 아니 전지현의 영화!

by 박평 2013. 1. 30.


<베를린>에 대해서 정말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시사회 후에 쏟아진 찬사는 그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액션 영화가 탄생 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기정사실화 되었다. 


실제로 본 <베를린>은 그 기대와 찬사를 모두 납득하게 했다. 이 영화는 작품성과 오락성이 공존하는 확실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특히 영화 안에서 보여준 액션은 단순히 장면 장면의 놀라움을 넘어서,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씬마다의 구성이 어우러지는 대단한 연출을 보여주었다. <베를린>에서 액션은 서서히 그 수준을 높여가면서 적절하게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액션씬만의 기승전결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 박수를 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강렬하게 머릿 속에 남은 것이 액션 말고 한가지 더 있다. 바로 전지현이다. <베를린>에서 전지현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가편집본을 본 박찬욱 감독이 '전지현 깜놀'이라는 문자를 보낼만 했다. 


<베를린>은 힘과 힘이 소명과 소명을 이유로 부딪히는 영화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에 충성하고 명예를 지키는 것이 소명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영화나 입지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소명이다. 또 누군가는 정치적 견해, 혹은 일이라는 소명이 있기도 하다. 이 다양한 소명들이 충돌하며 힘과 힘의 격돌이 일어난다. 그 어느 장소보다 이런 소명의 충돌이 자연스러운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그런데 전지현이 연기한 련정희에게는 힘이 없다. 그녀는 이 작품 안에서 가장 무능력하고, 가장 힘이 없는 존재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지닌 소명만큼은 다른 모든 이들의 소명보다 더 근원적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본연이 지니고 있는 아주 당연하고 보편적인 소명이다(영화를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있다). 그래서 그녀는 힘이 없지만, 그녀는 빛이 난다. 그녀가 지닌 이 보편적 소명은 결국 다른 이들의 소명과 충돌하고 때론 변화시킨다. 


전지현의 역할이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했던 것은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소명의 충돌을 그릴 물리적 바탕이었다면, 전지현이 소명의 충돌을 그릴 정서적 바탕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전지현은 정말 완벽하게 해냈다. 그녀의 힘이 없어 보이는 얼굴, 그리고 새하얀 피부는 그녀가 베를린이라는 곳에서 가장 힘이 없는 존재임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녀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소명마저 약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고, 그것의 고귀함을 지켜냈다. 전지현은 이 작품에서 환상적이었다.


이 같은 연기는 류승완 감독의 디렉션 대로 전지현을 철저하게 외롭게 둔 것으로 부터 시작 되었을 것이다. 가장 뜨겁게 사랑을 받아 왔을 대한민국 최고의 셀러브리티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외롭게 만듦으로써 그녀는 스스로도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하는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베를린 위에서 일어나는 이 다양한 사건들이 충돌하는 것 처럼 말이다. 바로 그 느낌이 이 작품 안에 오롯이 묻어 나왔다.


그런 점에서 <베를린>에서의 전지현은 류승완 감독의 연출력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전지현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녀는 눈에 확 띌만한 누가 봐도 전지현이 해야 할 것 같은 통통 튀는 역할(엽기적인 그녀, 예니콜 같은)을 벗어나서도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연기를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분명 한국이 낳은 최고의 액션 영화로 평가 받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지현의 가장 새롭고 가장 멋진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작품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도둑들의 예니콜을 이렇게 빨리 털어 낸, 그리고 너무나 좋은 연기를 보여준 전지현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전지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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