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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사람 울리는 예능, 서울촌놈

by 박평 2020. 7. 13.

 

이승기와 차태현이 한 지역으로 가, 그 지역 출신 연예인으로부터 지역 소개를 받는 프로그램. 그것이 '서울촌놈'이 가지고 있는 그림인 줄 알았다.

 

'1박2일'출신의 유호진PD와 이승기, 차태현의 만남은 '서울촌놈'이 '1박2일'의 변주 그 어디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서울촌놈'은 그 생각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만족시킨다.

 

'서울촌놈' 첫 회에서, 이승기와 차태현은 부산으로 내려간다. 부산을 소개해줄 게스트로는 장혁과 이시언 그리고 쌈디가 함께했다. 부산역 앞에서 만난 이들은 지역과 사투리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커다란 웃음을 선사한다. 이미 예능의 달인인 이승기와 차태현은 부산 출신 게스트의 부산 이야기에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변죽을 걸고, 무엇보다 크게 리액션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예능의 주인이 호스트인 이승기, 차태현에서 게스트인 장혁, 이시언, 쌈디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지역과 게스트 그리고 그 이야기를 조명하겠다는 PD의 의도는 어쩌면 예능계 블루칩이면서도 가장 게스트를 잘 살려줄 수 있는 이승기와 차태현을 캐스팅하는 것으로 이미 반쯤 성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촌놈'은 호스트와 게스트의 관계를 설정하자마자 바로 '1박2일'류의 게임을 시작한다. 식사를 걸고 하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대결형 게임은 서울팀과 부산팀으로 나뉘어 재현되지만, 격한 벌칙으로 게임의 긴장을 높이는 대신 게임 구성을 재밌게 가져가는 아이디어로 재미를 끌어올린다. '1박2일'이 보여줬던 과격함은 상당히 낮추면서 재미는 끌어올릴 수 있게 한 것은 분명 연출의 힘이다. 

 

게다가 이승기의 예능감은 이 분위기를 가장 훌륭하게 이끌어 나간다. 계속 이어지는 서울팀과 부산팀의 대결에서 이승기는 적당히 놀리고 적당히 긴장을 높이다가도 거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로와 과격함을 성공적으로 다운시킨다. 태종대 횟집에서 부산팀은 아침 식사에 이어 두 번 연속 게임에서 졌다. 어쩔 수 없이 벌칙을 해야했고, 벌칙 수행 후에는 쌈디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소라를 다 먹은 후라 쌈디는 양파를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다시 소라를 주문하고 또 게임을 했는데, 부산팀은 또 지고 만다. 게임은 거기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이승기는 한 번더 게임을 제시하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서울'대 '부산'의 팀전이 아니라 부산의 개인전을 시켜버린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부산팀이 어떻게든 먹을 수 있도록 자연스레 판을 깔아준 것이다.

 

'부산 팀 한명에게 몰아주는 부산의 유명한 해수욕장 5군데 말하기.' 

 

이 대결로 예능의 재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국 부산팀이 소라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예능으로서의 긴장감은 끌고 가되 게스트를 배려하고 시청자가 경험해야할 경쟁의 피로감은 낮춰준 것은 이승기가 지닌 힘이다. 여기서 차태현은 게임으로 소라를 혼자 독식해야하는 쌈디가 부산팀과 소라를 나눠 먹는 것을 '부산의 의리'로 포장해준다. 놀라울 정도의 호흡이고, 호스트의 시너지가 발휘되는 것이다.

 

이렇게 '1박2일'의 가장 장점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한 복불복 형태의 게임은 재미는 높이되 피로를 줄이는 방향으로 큰 개선을 이뤄냈다.

 

하지만 '서울촌놈'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게스트의 한 명인 쌈디의 음악적 고향인 장소와 지인을 만나게 하는 것이었다. 

 

'서울촌놈'은 게임과 명소탐방으로 계속해서 부산을 담는듯 보이지만, 부산에서 음악을 시작한 쌈디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쌈디가 음악했던 부산대역 똥다리에 찾아간 '서울촌놈'팀은 쌈디의 음악을 틀며, 이를 위해 제작한 비디오를 벽에 뿌린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고 성공한 인물에게 그 시작을 상기시키는 연출은 실제로 감동을 받은 쌈디의 모습을 이끌어내며 시청자에게 똑같은 뭉클함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인과의 만남.

 

쌈디가 공연을 처음 시작하게 해준 당시 클럽 2PAC의 사장님을 만난 쌈디는 결국 눈물을 보인다. 자신이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라고 말하는 그 때를 이루게 해준 사람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드라마였다. 특히 자신은 찬란했던 시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제 막 시작했던 가장 초라한 시기, 그리고 그 초라한 자신을 알아봐주고 손을 내밀고 그를 무대위로 올린 공간과 사람에 대한 감사는 '서울촌놈'이 보여준 가장 뜨거운 순간이었다.

 

과거 유호진PD의 '1박2일'에서 가장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항상 회자되는 명작이 있다. 바로 '서울 시간 여행'편이다. PD는 맴버들에게 각각 장소를 알려주고 사진을 찍어오라고 시킨다. 그리고 사진 중에서 우승작을 꼽는데, 출연진들은 선정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한다. PD는 출연진에게 선정의 기준이 되는 '예'가 있다고 알리고 사진을 공개하는데, 그것은 출연진의 부모님이 과거에 해당 장소에 가서 찍은 사진이었다. 차태현은 한 예능프로에서 이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제작진을 칭찬하고 인정했다고 밝힌 바 있을 정도였다. 

 

특히 당시 에피소드에 수많은 사람이 함께 감동을 받은 이유는 출연진이 느낀 감동이 너무나 생생해 그것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장소와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큰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출연진의 진심이 시청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유호진PD는 이 때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촌놈'은 과거 '1박2일'이 보여준 이 유산을 그대로 가져와 발전시킨다. 게스트제를 도입하여 지역과 사람의 스토리를 무한정 확장시키고, 존재감 강한 호스트를 붙여 게스트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쫓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며, 그렇게 지역과 사람을 기반으로한 게스트의 감동을 이끌어낸다. 

 

더군다나 '서울촌놈'이 보여준 지역과 사람에 대한 시선이 더욱 따듯한 것은 과거의 '잘나가던 나'가 아니라 과거의 '초라했지만 뜨거웠던 나'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렇게 '서울촌놈'은 성공에 기대지 않고 '시작과 열정'에 기대며, 고향과 사람에 집중한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그 시절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렇게 '서울촌놈'은 '1박2일'에서 좋은 유산을 가져와 더욱 극적으로 발전시켜냈다. '1박2일'만큼 웃기지만, 그보다 덜 피로하고 더 많이 따뜻하며 감동적인 예능을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어느새 출연자 위주의 예능, 출연자의 힘에 몰두한 예능이 많아진 환경에서 연출이 정말 공을 들였을 때, 얼마나 큰 시너지가 나올 수 있는지를 '서울촌놈'은 보여준다.

 

아직 첫회에 모든 것을 판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서울촌놈'은 근래에 보기힘든 호스트와 게스트 그리고 제작진이 모두 자기의 역량을 한 껏 발휘한 예능이며, 재미와 편안함 그리고 감동을 모두 잡아낸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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