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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버스커버스커 2집,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날려 버리다.

by 박평 2016. 3. 25.



힙겹게 음원사이트에 접속했다. 밤 12시에 음원이 공개 된다는 소식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접한 것인지, 음원 사이트는 어느새 느려져 있었다. 최신 앨범 화면에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검색을 통해 버스커버스커 2집이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운 받는 시간도 아까워서 바로 스트리밍서비스에 연결했다. 그리고 버스커버스커의 가을 노래들이 서서히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첫곡의 시작부터 가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제목도 가을밤. 선선해진 이 밤에 딱 알맞은 구성이다. 버스커버스커 2집의 첫곡은 무려 3분 4초짜리 음악이다. 노래가 없이 연주로만 이뤄진 음악으로  앨범을 시작한다는 것이 이들의 자신감인지 아니면 버스커버스커의 세계로 안내 하고자 하는 일종의 정화 의식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허나 이 첫 트랙으로 인해, 버스커버스커의 2집은 그 자신의 색깔을 청자에게 인식시킨다. 가을 밤의 쓸쓸하고 서늘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트랙 '잘할 걸'로 그들은 가을의 이별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범준의 노래와 가사, 그리고 그 바탕을 탄탄하게 받치고 있는 사운드는 바로 듣는 이의 가슴을 두드린다. 그 강도가 쌔다. 그리고 '사랑은 타이밍', '처음엔 사랑이란게'가 이어진다. '잘할 걸'보다는 조금 가벼워지지만 그 가벼움에는 여전히 쓸쓸함이 묻어 있다. 겨우 '시원한 여자'가 되서야 이들의 가을 이야기는 다시 조금 씩 밝아지기 시작한다. 마치 인디안 썸머가 있는 듯이. '그대 입술이', '줄리엣', '아름다운 나이'로 이어지는 앨범의 후반부는 앞의 가을의 정취에 비해서는 상당히 밝아졌다. 다시 여름이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지막 트랙인 '밤'은 '여름밤에 이른 겨울을 느끼는 건 왠지 나도 몰라'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다시 여름으로의 회귀,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는 겨울. 그렇게 앨범은 끝이 난다.


이 앨범 참으로 재밌다. 처음에 가을의 쓸쓸함으로 시작해서 뒤로 갈 수록 다시 여름으로 돌아가는 듯한 구성이다. 만약 이들이 1집 처럼 '마무리'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면, 나는 2집의 구성을 '인디안 썸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가을의 쓸쓸함에서 여름의 환희로의 복귀다. 아마 2집 마무리가 발매 된다면, 다시 쓸쓸한 분위기가 이어지며, 겨울의 이야기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2집 마무리의 존재 유무에 상관없이 이 앨범은 모든 트랙을 거꾸로 구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게 한다. 일종의 반전이다. '가을밤'에서 부터 '밤'까지 트랙을 순서대로 들으면, 쓸쓸한 가을에 갑자기 찾아오는 따뜻한 환희를 생각하게 하지만, 만약 역순으로 들으면, 이 앨범은 여름의 환희에서 가을의 쓸쓸함으로 변하는 느낌을 그린 것이 된다. 반대로 들었을 때, '잘할 걸'이 나오고 '가을밤'이 이어지게 되는 데, 이 가사한 줄 없는 '가을밤'이 주는 뭉클함은 생각보다 크다. 미칠 듯이 비어있는 느낌, 외로움, 애잔함등이 한꺼번에 솟구친다. 마치 '외로움 증폭장치'처럼. 


이렇듯 2집은 순서대로 들으면 그 나름의 느낌이, 반대로 들으면 또 그 나름의 느낌이 생기는 독특한 구성이다. 이걸 우연히 했다면 감각이 기가 막힌 거고, 노린거면 천재다. 혹은 가수가 아무생각 안했다면, 청자 중의 하나로서 이 앨범에서 이런 것을 느끼기도 했다는 그냥 흔한 감상평이 될 것이다. 뭐가 됐든 정답은 없다. 어차피 듣는 사람이 느끼기 나름이기 때문에. 하지만 앨범이 앨범으로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 그것은 확실히 듣는 사람의 가슴을 두드릴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버스커버스커 2집은 1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 앨범 자켓 부터가 그렇다. 그들은 그들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해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버스커버스커가 그냥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들은 상당히 많이 성장했다. 그 성장의 그림이 버스커버스커의 2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앨범에서 장범준의 보컬이 기가 막히게 성장 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너무 비슷한 보컬 톤만 가지고 있어서, 뻔하고 물린다는 평도 있었는데 이 앨범에서는 다양한 보컬톤을 구사한다. 진성 가성을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가사 끝을 날려 버리거나 딱 잡아 버리는 등, 보컬이 전에 비해 상당히 다채로워 졌다. 그 다채로움에 더해 보컬 실력 자체도 확실히 성장한 것이 보인다. '잘할 걸', '처음엔 사랑이란게', '밤'을 들어보면 그의 보컬이 아주 좋아졌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작곡을 맡고 있는 장범준의 곡 구성 능력 또한 상당히 발전했다. 1집에 비해 2집의 모든 곡들에서 사운드가 훨씬 풍성해 졌다. 단지 사운드만 풍성해진 것이 아니라, 비어 있을 곳에서는 비어 있고, 채워져 있을 곳에서는 채워져 있어서, 그 이음새가 상당히 훌륭하다. 기본 구성인 기타,베이스,드럼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이끌어 가며, 필요할 때마다 그 위에 다양한 사운드가 더해진다. 곡이 풍성해지고, 다양한 사운드가 들어가니 곡의 단조로움이 탈피 되었다. 분명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그 안에서 약간의 차이가 생겨나, 앨범 전체의 완성도는 확실히 올라갔다. 


특히 김형태가 맡고 있는 베이스 라인의 발전이 눈부시다. 그의 베이스가 앨범 내내 곡을 더욱 깊고 탄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것이 베이스라인을 잘 만든 장범준의 실력인지, 아니면 김형태의 베이스 실력의 발전 덕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둘 다 발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새벽 1시 기준 맬론의 실시간 차트 1위부터 9위까지가 버스커버스커 2집이다. 벅스뮤직, 올레뮤직도 마찬가지이다. 소리바다는 9위에 임창정의 신곡이 올라와 있고 1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버스커버스커 2집으로 가득차 있다. 역시 버스커버스커 답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 정도의 반응이다. 사실 이같은 반응은 이미 얼마 전부터 예견되고 있었다. 인터넷 상에서 그들의 음원 발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었고, 버스커버스커의 앨범 발매 시간에 대한 정보가 돌아 다니고 있었다. 아이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중이 앨범 발매 시간을 기다려서 음악을 듣는 이 같은 일은 확실히 놀라운 것이다. 


버스커버스커 2집은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물론 취향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대중의 생각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동안 이들의 음악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을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노래를 더욱 재밌게 즐기고 싶다면 꼭 앨범 전체를 순서에 따라 혹은 역순으로 들어 볼 것을 권한다. 앨범으로서의 힘이 생각보다 큰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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