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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여성가족부는 심의 기관인가?

by 박평 2012. 9. 21.

여성가족부가 만든 게임평가표가 공개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게임평가표는 청소년이 이용하는 전체 게임물을 대상으로 중독성을 평가하는 기준이며, 온라인게임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게임까지 셧다운제 대상으로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평가표가 문제가 된 이유는, '다른 사람과의 협력', '레벨업'등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게임의 요소 조차도 평가항목에 넣었다는 점이다. 항목 중 '4. 게임을 오래해야만 좋은 게임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게임구조'만 봐도 이 평가표가 게임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게임을 하면서 같이 하는 팀원들과 함께 무엇을 해나간다는 뿌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게임구조'와 같은 항목에서는 게임이 줄 수 있는 긍정적 요소조차도 문제화 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팀원들과 함께 하는 것이 문제라면 차라리 '3. 게임을 하면서 같이 하는 팀원들과 함께 무엇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게임구조'라고 '뿌듯한'을 '불안한'으로 바꾸기라도 했어야 할 것이다. 평가 항목 부터 '긍정적'인데 이것을 '부정적'요소로 평가하려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여성가족부의 게임물 평가 자문단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게임 규제 강경론자들이 대거 포함됐다는 것이다. 또한 익명의 자문위원은 '전자신문'을 통해 '자문회의는 평가항목이 타당한지 평가하는 자리인데, 연구자료 없이 단 2페이지로 만들어진 평가표만 주고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며, '평가항목이 너무 자의적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면 "애들이 밤에 잠을 안 자는데 문제가 있지 않느냐? 혹은 충분히 연구됐다'정도로만 답을 했다고 한다. 이 평가표 자체가 충분한 논의 없이 대충 만들어 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성가족부의 심의 욕심은 단순히 게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여성가족부는 노래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심의 규정을 해왔고, 이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비판을 들어왔다. 가사에 술이나 담배가 들어 갔다는 이유 만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싸이의 right now는 '웃기고 앉았네 아주 놀고  XX졌네'와 같은 가사가 비속어로 지적되면서 유해매체로 지정되었다. 


이런 전문적이지 못한 심의는 결국 2011년에 있었던 청소년 유해매체물 취소 소송에서 모두 패한 것으로 심의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게임이건 음악이건 어느 정도의 심의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분명히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여성가족부가 매우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내 놓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여성 가족부의 주요 업무가 나와있다. 


  • -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및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 - 정책의 성별영향 분석·평가
  • - 여성인력의 개발·활용
  • - 청소년정책의 협의·조정
  • - 청소년 활동진흥 및 역량개발
  • - 유해환경으로부터의 청소년 보호
  • - 위기청소년 등의 보호·지원
  • - 가족 및 다문화가족 정책의 기획·종합
  • - 양육·부양 등 가족기능의 지원
  • - 다문화가족의 사회통합 지원
  • - 성폭력·가정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
  • - 성매매 예방 및 피해자 보호
  • - 아동·청소년 등의 성보호
  • - 이주여성·여성장애인 등의 권익보호


매우 중요하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업무 어디에도 '심의'를 하라는 업무는 적혀 있지 않다. '위기 청소년 등의 보호지원'이나 '유해환경으로부터의 청소년 보호'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이를 위해 올바른 심의 규정을 세우도록 관련 기관에 촉구하고, 이런 환경에서 청소년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해야지 자의적 판단에 의해서 유해환경을 마음대로 규제하려 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일 것이다. 하물며 그 유해환경에 대한 판단이 이렇게 자의적이라면 말이다.


심의가 필요하면 심의 전문 기관을 만들도록 촉구하면 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전문가들을 포함한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된 심의기관이 자의적 판단이 아닌 연구와 논의에 의해서 적어도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심의 기준을 만들도록 도우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가족부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만 하면 될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적절한 심의기준을 가지고 심의를 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여성가족부가 심의를 하는 것 자체다. 올바른 심의기준을 만들 수 있는 전문 기관 혹은 전문 부서가 만들어 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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