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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청춘에게 바치는 가장 잔인한 찬사, <미생>

by 박평 2014. 10. 26.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는 실패자다. 그는 기재를 지니고 있었지만, 결국 프로기사가 되는 것에 실패했다. 사람이 재능을 지니고 있는 일에서 실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장그래는 재능이 있었고, 심지어는 그 재능을 지니고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자기보다 못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 이들도 프로기사가 되는 상황에서 그는 실패했다. 그는 실패한 원인을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만 너무 아프지 않을 거라고 자기를 속인다. 실상은 바둑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던 상황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장그래의 실패는 현재를 사는 수많은 청춘의 모습을 그린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꿈을 조금은 수월하게 이뤄갈 수 있지만 누군가는 하루하루의 생활에 치여서 자신이 지닌 재능조차 제대로 만개할 기회를 지니지 못한다. 누군가는 편하게 학점 관리에만 신경 쓰겠지만, 누군가는 하루하루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 벌기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이쯤 되면, 학교는 그저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목적만으로 존재하는 곳이 되어 버린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 돈을 벌며 그저 학교에 다닌다는 그 자체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청춘은 실패의 씨앗을 품는다. 장그래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청춘에게 장그래의 실패는 자신의 실패이며, 그렇기에 지독하게 가슴 아프다. 


그러나 <미생>은 청춘의 실패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패했지만, 자신의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청춘에게 찬사를 보낸다. 작품 속에서 장그래는 꽤 대단한 능력을 보인다. 그는 고졸에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만을 가졌을 뿐이지만, 며칠 만에 경제 용어를 외워서 나타나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전화번호 외우기와 같은 일을 찾아 할 줄 안다. 또한, 직원채용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에서는 한상률이라는 상대를 만나서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내고, 결국 꽤 괜찮은 성과를 얻는다. 실패한 장그래지만, 꽤 좋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가 해낸 이 모든 성과의 중심에는 그가 최선의 다했던 '바둑'이 있다. 그렇게 장그래는 바둑에서 벗어났지만, 바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실패했던 그 시간들은 여전히 남아 장그래가 지닌 경쟁력의 근본이 되어준다. 그렇게 <미생>은 청춘의 실패에 찬사를 보낸다. 그들이 열심히 노력했던 그 일의 결과가 실패였을지라도, 그 실패는 남아 청춘에게 힘이 되어준다. 과거의 노력에 대한 찬사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 시간의 땀만큼은 위대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사'는 여전히 잔인하다. 비록 과거의 그 노력과 땀은 남아서 장그래에게 힘이 되어 주지만, 그 노력의 결과로 그에게 주어진 것은 결국 '비정규직'에 불과하다. 아니, 사실 그가 혼신을 다했던 과거가 그에게 남겨준 것은 고작 '인턴'자리 하나였다. 장그래는 겨우 인턴이 되었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노력했다. 찬사를 받은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치열한 노력이 결합하면서 그는 고작 '계약직'이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찬사는 잔인하며, 동시에 너무나 현실적이다. 현실적인 이 이야기는 그래서 보기 힘들지만, 또 동시에 치유가 된다. 허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생>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독한 경쟁과 치열한 상황 속에서 살아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에는 장그래를 넘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견디고 있는 오과장, 김대리와 같은 이들에 대한 찬사도 함께 들어있다. 동시에 그들이 버텨내야 하는 잔인한 매일 또한 담겨 있다. 그렇게 <미생>은 시청자들에게 잔인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 삶, 비록 끔찍하지만 버티라고. 버티면 살아남는다고. 우리는 모두 미생이지만, 버티다 보면 완생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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