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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겨울왕국, 새로운 가치를 선포하다.

by 박평 2014. 2. 2.




세상은 변한다. 한때는 옳았던 것이 어느 순간 옳지 않은 것이 되고, 한때는 세련됐던 것이 어느덧 구식이 되어 버린다. 이런 일이 옷이나 물건 같은 것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그 사람을 감싸고 있는 가치에서도 이와 같은 일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결혼 전에 임신해도 결혼 선물이라고 좋아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동네가 발칵 뒤집힐 만한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디즈니의 만화도 변했다. 그 변화의 시작을 어디부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슈렉'을 만들었던 드림웍스의 사람들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분명한 듯싶다. 슈렉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오나와 슈렉이 키스하는 순간, 모든 아이와 부모들은 왕자님으로 변할 슈렉을 생각했을 것이다. 전통은 우리에게 그렇게 이야기해왔다. 


드림웍스는 이 전통적 관념을 깨부순다. 피오나가 슈렉처럼 괴물이 된 것이다. 이 위대한 전통의 전복은 잘생기고 멋지며 '왕자, 공주'가 무조건 '옳고 바람직한'시대가 끝났음을 천명했다. 그 사람들이 디즈니에 들어왔으니 어찌 디즈니가 영향을 받지 않겠는가? 디즈니 또한 새로운 가치를 담은 우화가 서서히 전통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라푼젤만 해도 독립적 여성의 모습을 그리며, 과거에 왕자님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그런 전통적 공주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겨울왕국이 나왔다.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수많은 전통적 가치의 전복은 새롭지 않다. 이미 디즈니는 변화의 과정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노래라는 훌륭한 수단에 의해 하나의 독립된 시퀸스로서 완결성을 지니는 순간, 새로운 가치가 주는 강렬함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엘사가 새로운 가치를 천명한 순간, 그렇게 '겨울왕국'은 지금까지 서서히 변화하고 있던 새로운 관념을 만방에 선포하게 된다.


과거에 저주를 받은 공주가 있다면, 그 공주는 방안에 갇힌 체 자신을 구해줄 왕자를 기다려야만 했다. 피동적 피조물이 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기이다. 자기의 인생이 남에 의해 구원되어야 한다는 그 관념은 결국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그래서 동화의 끝은 언제나 '그들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야 했다. 스스로의 삶을 살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또 다른 위기의 발생은 곧, 또 다른 타자에의 의존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마무리 짓지 않으면, 주인공의 인생은 다시 또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것을 모두가 알았을 것이다.


엘사의 위대함은 바로 이것에 있다. 피동적 피조물에서 탈출한 것이다. 그녀는 결국 성에서 도망치지만, 우울해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저주 혹은 힘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행복해한다. 그 두려움과 행복의 교묘한 줄타기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더 이상 예쁜 소녀, 말 잘 듣는 아이는 없다며 자신의 독립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할 때, 과거 타자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었던 공주는 사라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독립적 자아가 나타난다. 그녀가 머리를 풀어헤치는 순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선포한 순간, 모든 관객은 자신들을 옭아매고 있었던 타자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엘사와 함께 독립적 자아를 선포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시퀸스가 영화 전체보다 위대할 수도 있는 순간이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을 대신해 선포한다. '너는 너'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을 상처입힐 수도 있고, 스스로 상처받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런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이 맞는 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함께 걸어줄 누군가에 의해,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성찰함으로써, 독립적인 내가 남과 따뜻하게 교류하고 당당하게 자신으로서 살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겨울왕국의 성공은 물론 전통적인 방식을 깬 스토리 구성 때문일 수도 있고, 좋은 시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좋은 노래 때문일 수도 있고, 미국에서의 흥행이 한국 시장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울왕국 성공의 핵심은 엘사의 각성에 있다. 그녀가 Let it go를 부르며, 자기 자신을 선포할 때, 관객은 우리를 감싸고 있던 그 모든 굴레를 벗어 버리는 간접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하나의 시퀸스는 디즈니의 새로운 선포이며, 동시에 관객들을 대신한 선포이기도 하다. '너 자신으로 살라'라는.


그렇게 디즈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선포식을 끝마쳤다. 이 새로운 가치 또한 시간이 지나면 구식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우리에겐 공감되고 필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자기가 자기답게 사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여기는, 엘사가 혼자 갇혀 있어야 하는 방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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