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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일본 문화에 대한 충실한 오마주, '퍼시픽림'

by 박평 2013. 7. 15.



지금 우리야 아시아에서 한국 문화가 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시아권에서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문화는 고민의 여지 없이 일본 문화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대중 작품들이 일본의 문화에 대한 오마주를 해 왔고, 또한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드래곤볼, 건담, 공각기동대, 아키라 등에 대한 오마주는 일부러 찾아 볼 필요도 없이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 하나 안에도 '드래곤볼, 공각기동대, 아키라'에 대한 오마주가 수북히 쌓여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괴수와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의 싸움이 주 줄거리인 '퍼시픽림'에 일본 문화에 대한 오마주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일단 '괴수'가 나오는 순간 '고질라'와 '울트라맨'을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이런 특촬물들은 당시 큰 사랑을 받았으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심지어는 필자도 울트라맨을 따라 손모양을 만들고 친구들을 공격했었을 정도였다.(아무것도 발사 되지 않았지만.) 


하지만 '퍼시픽림'은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과거 로봇물이나 특촬물 혹은 애니메이션을 봐왔던 이들이라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본 문화의 오마주가 가득차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예거(괴수와 싸우기 위해 만든 대형로보트)의 파일럿이 2명이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둘이 똑같은 동작을 취하는 것은 에반게리온에서 '신지'와 '아스카'의 듀엣 플레이를 생각나게 한다. (건버스터의 설정도 생각할 수 있다.) 파일럿들의 뇌를 연결 해서 조작한다는 것 또한 에반게리온에서 나온 '싱크로'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예거를 운영하는 집단이 후에 '레지스탕스'가 되는 것 또한 에반게리온에서 'NERV'가 겪는 위치랑 꽤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여자 주인공인 일본 여자 마코의 머리 스타일은 레이의 그것과 일치하고 심지어는 머리 끝에 레이의 머리 색깔이었던 파란색 브릿지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탈출정도 에반게리온과 흡사하다. 싸움이 끝나고 탈출정에서 레이가 나올 때는 세컨드 임팩트 때 탈출정에서 나왔던 미사토의 모습이 그려진다. 


홍콩 시장의 모습은 아키라의 거리 모습이 떠오른다. 아키라를 오마주한 블레이드 런너에서 보이는 것과도 흡사함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로봇 조종을 위해 파일럿이 직접 움직인다는 설정 또한 자주 사용 된 일본 로봇 애니의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그랑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괴수와의 싸움은 울트라맨을 상상하게 된다. 괴수들의 모습은 이제 워낙 다양해지고 동시에 획일화 되어서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울트라맨에 등장했던 괴수들을 상당히 떠오르게 한다. 물론 '고질라'를 빼 놓으면 섭섭할 것이다. 로봇을 일종의 병기로서 사용하는 것은 건담이 만든 '리얼로봇'계의 설정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로보트에 조종석인 머리가 합체 되는 것은 '마징가Z'나 '그랜다이저'가 떠오른다. 


물론 퍼시픽림이 단순히 일본 로봇이나 특촬물만을 오마주 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어떤 정서 같은 것 또한 퍼시픽림안에서 구현된다. 마코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스타커의 모습이나 아버지와도 같은 스타커의 말에 거의 토달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순종적인 마코의 모습은 정확하게 일본인의 정서가 묻어나 있는 장면이다. 이와 같은 장면이 단순히 캐릭터의 설정이라고 보기 힘든 것은 마지막 스타커가 죽을 때, '센세!'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스승 혹은 사부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을 통해, 결국 일본의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제의 관계가 그대로 오마주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마코와 스타커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묘사나 설명이 없기에 그 둘의 관계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지만, 저 단어 한마디로 일본의 보편적 문화를 그대로 차용했음이 드러나고 둘의 관계는 선명해진다.


이렇듯 퍼시픽림은 일본 문화에 대한 아주 많은 오마주로 가득차 있다. 일종의 헌정영화라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이 작품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고, 이 작품을 선물로 여기기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일본에만 선물인 것은 아니다. 어릴 때 엄청난 괴물들을 제압했던 로봇의 로켓펀치 한방에 설레였던 남자들이라면 이 작품을 보며 설레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기술 이름을 좀 더 뜨겁게 외치는 열혈이 부족했던 점은 내내 아쉽다.) 그 당시 로봇의 로망에 빠졌던 남자들에게도 이 영화는 확실한 선물임에 분명하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스토리나 설정의 빈약함이 그렇다. 방사능이 원인이었던 고지라나, 아예 복음적인 설정을 가져온 에반게리온, 세기말의 우울함을 극대화 시켜버린 아키라, 디지털 시대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 공각기동대와는 다르게 '퍼시픽림'은 너무나 뻔한 설정 '외계인이 우리를 식민지로 삼을 거래!'를 그대로 가져온다. 얼마전 '맨 오브 스틸'에서도 봤던 바로 그 설정이다. 그러면서 헐리우드가 좋아하는 '환경'이야기를 은근 슬쩍 얹는다. '지구의 환경이 나빠지면서 마침내 그들이 좋아할 만한 상태가 됐어!' 하지만, 그럼에도 어째서 그들이 어떤 규칙에 의해 '카이주(일본어로 괴수, 퍼시픽림에서 괴수를 지칭할 때 쓰이는 용어)'를 내 보내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복제 한다는 카이주가 어째서 임신을 한건지도 그렇다. 이렇듯 이유를 판단하기 힘든 설정들이 존재하고, 덕분에 관객들은 '내용'은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의 부족이 이 작품이 지닌 가치를 폄하시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는 울트라맨의 세세한 설정 때문에 환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환호했던 것은 일단 괴수를 때려 눕혔고, 지구를 구해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 영화를 통해 일본 문화가 부러워 졌음은 분명하다. 다른 이에게 이렇게 큰 문화적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언젠가 한국의 문화도 이런 오마주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히 그런 날이 올것이다. 


세상 사는거 골치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땐 일단 속 시원하게 로켓트 펀치를 날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생각없이 한방 날려 버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큰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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