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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가 꼭 정의의 사도일 필요가 있을까? <데드풀>

by 박평 2016. 2. 15.





- 스포일러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가장 이상적인 '슈퍼히어로'가 누구인지 물으면, 아마 쉽게 '슈퍼맨'이라고 답할 것 같다. 초월적인 힘과 완전히 순수한 정의의 사도인 슈퍼맨이야말로 '히어로'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일 것이다. '슈퍼맨'이 활동하고 있는 DC코믹스의 또 다른 히어로인 '배트맨'도 '히어로'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 역시 정의를 수호하는 멋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단, 배트맨은 슈퍼맨과는 다르다. 밝고 맑고 빛나는 정의의 슈퍼맨은 언제나 당당하고 멋지다. 얼마나 당당한지 심지어 쫄쫄이 복장에 팬티를 밖으로 빼입어도 당당하다. 빛나는 영웅이다. 그에 반해 배트맨은 어두컴컴하다. 옷도 상징 동물도 음침하고 어두운데, 심지어 정의를 수호하는 히어로이면서도 스스로를 악인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는 히어로 배트맨의 살신성인 자세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슈퍼맨이고 배트맨이고 결국 정의의 편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데드풀>에서 데드풀은 슈퍼히어로라고 해야 하지만, 자기 스스로 히어로가 아님을 명확하게 밝힌다. 힘이 있다고 꼭 정의의 편에 서야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꼭 세상을 다 멸망시키겠다고 발악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힘이 있고, 내가 맘에 안 드는 인물이 있으면 까짓거 그놈을 처리하겠다는 개인적인 원한을 위해 자기 힘을 쓰겠다는 것이 뭐가 나쁜가? 오히려 이편이 더욱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데드풀은 힘이 생겼다고 갑자기 자기의 삶을 팽개치고 정의의 수호자로 나서거나, 갑자기 세계의 평화를 다 위협하는 빌런으로 변해버리는 캐릭터들보다 훨씬 현실감이 있는 존재가 되어서 나타난다.


문제는 심의다. 힘을 가진 주인공이 사람 몇쯤 아무렇게나 죽인다. 아는 사람도 죽인다. 심지어는 자신이 탄 택시 운전사에게 연적을 납치해 죽여 버리라고 말한다.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면 그것이 만화든 영화든 심의를 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데드풀이 지닌 자기 인식적 성향은 어쩌면 이런 장애물을 가장 교묘히 피해갈 수 있는 설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내내 데드풀은 나래이션을 한다. 현실감을 최대한 높이려는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이것이 정확하게 영화이며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은연중에 계속 밝힌다. 심지어는 '제작비 부족'에 대해서 스스로 영화 안에서 입을 털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데드풀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절대 주인공이어서는 안되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히어로가 스스로가 영화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계속해서 이것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심지어는 관객에게 대화를 걸면서. 이런 기법을 불쾌하게 쓰면 과거에 개봉했던 <퍼니게임> 같은 작품이 되지만 유머와 재기발랄과 함께 쓰면 <데드풀> 같은 영화가 나온다. 


지극히 현실적인 히어로 캐릭터를 가지고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을 그린다. 이 설정의 충돌이 만들어 준 표현의 여유 공간 안에서 영화 <데드풀>은 표현하고 싶은 다양한 것들을 마음껏 표현해 버린다. 용서 같은 거 안 하고 총으로 막 쏴버리고 시체 가지고 장난도 치고, 사람 죽이라고 말도 하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데드풀은 인간이 지닌 '나쁜 욕망'을 아주 영리하게 드러내고 있다. 마치 게임으로 치자면 GTA나 비슷하달까? 이 게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만큼, 이런 방식이 대중에게서 인기를 끌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다. 실제로 <데드풀>은 미국에서는 개봉하자마자 역대 오프닝 스코어들을 갈아치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드풀>을 평범한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아직도 히어로에 선과 정의라는 가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어르신이나 폭력과 살인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에게는 썩 기분 좋은 영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그냥 자기 멋대로 날뛰는 캐릭터를 보며 시원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꽤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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