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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마왕 신해철에 대한 소회

by 박평 2014. 10. 28.

언제나 굳건할 것 같았던 그가, 너무나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 아직도 그가 만든 노랫말들이 귀에서 맴돌고, 그가 전한 이야기들이 가슴 한편에 아른한데, 그는 없다. 너무나 강했고, 우리가 마왕이라고 불렀지만, 너무나 소년 같았던, 끝까지 순수했던 그에 대한 소회를 적어 본다.


신해철은 음악가였다. 그가 대학가요제에 '무한궤도'라는 팀으로 '그대에게'를 들고 나왔을 때, 그리고 그 전주가 시작됐을 때, 신해철은 '레전드'가 됐다. 그 당시 그가 만들어낸 환희와 열정은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 여전히 우리는 뜨거운 순간을 '그대에게'와 함께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대에게'는 청춘의 뜨거움을 그 어느 곡보다도 선명하게 그린 곡이며, 신해철이라는 한 인물의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대에게'는 뜨거움과 순수함이 함께하고 있는 곡이고, 신해철은 그렇게 살았다. 그는 '슬픈 표정 짓지 말라'고, '난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사람이며, 영원히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을 믿겠다고 다짐했던 사람이었다. 음악 외적으로도 그랬다. 그는 누구보다 순수했다. '그대에게'는 그래서 가장 신해철다운 음악이다.


'Here, I stand For You'는 신해철의 보컬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최근 슈퍼스타K 시즌 6에서 곽진언이 저음으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때 나는 오랜만에 저음의 힘을 지닌 가수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내게 저음의 강력함을 알게 해준 가수는 신해철과 김동률이었다. 나지막이 약속과 헌신과 운명과 영원 그리고 사랑을 믿겠다고 말하는 그의 나레이션이 곡의 앞과 뒤를 채운다. 그리고 곡의 후렴에서는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 줘'라고 절규한다. 이 간극에서 오는 희열은 크다. 그는 좋은 보컬이기도 했다.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면서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는 이 노래에서 병아리 얄리를 통해 죽음에 대해 노래한다. 병아리라는 소재로 그는 가장 순수한 소년의 모습을 지켜가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그린다. 그 가사 한 줄 한 줄에 담겨 있는 시선은 쓸쓸하지만 따뜻하다. 노래의 끝에 그는 그렇게 말한다.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 달라고. 


'도시인'을 들었을 때, 나는 이 노래가 얼마나 대단한 노래인지 몰랐다. 그리고 노래가 발표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 이 곡의 가사를 들으며, 이 곡이 얼마나 대단한 곡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패스트 푸드,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바늘 보면서,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 경적 소리 어깨를 늘어뜨린 학생들 this is the city life' 그는 이렇게 1993년의 도시를 묘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려낸 도시인의 삶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신해철은 우리가 사는 삶과 사회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고, 사유했다. 


'라젠카 세이브 어스'앨범은 한국에서 천대받던 장르인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꿈꾸던 이들에게 너무나 감사한 명반이다. 만화영화의 OST가 얼마나 훌륭해질 수 있는지, 단지 어린애들만 듣고, 보는 그런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도 하나의 멋진 매체라는 것을 '라젠카 세이브 어스'앨범은 증명했다. 비록 만화 그 자체의 완성도는 좀 떨어졌음에도, 우리에게도 아주 멋진 애니메이션 OST 하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앨범의 가치는 충분했다. 락밴드로서 그 당시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애니메이션의 OST를 맡은 것은 파격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 신해철에게는 가장 잘 맞는 옷이었을 지도 모른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축복이자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노래를 불러줄 사람이 노무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것은 두려움이 되고, 걱정이 된다. 그저 노래 한 곡 부르는 것인데 말이다. 신해철은 그런 면에서 항상 용감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말을 했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한 정치인을 위해 지지연설을 하기도 했고, 그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분노했고, 뱀 문신을 새겼으며, 그를 위해 노래했다. 나이를 먹고, 세상에 자리를 잡고, 지킬 것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약해지고, 눈치 보고, 조심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행동했다. 그는 소년의 모습을 놓지 않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한 그의 노래 'Goodbye Mr.Trouble'은 그래서 가장 신해철다운 노래였다.


이 노래들 말고도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명곡을 남겼다. 그 노래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의미와, 깊은 사유들은 우리에게 분명히 위안과 위로를 안겨줬다. 그는 그렇게 노래했다. 


신해철에게 노래만큼 중요했던 것은 그의 말이었다. 그는 똑똑했고, 달변이었고, 열려 있었다. 그가 진행했던 '고스트 스테이션'은 대한민국 라디오 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형식을 파괴했고, 편하게 그의 말을 전달할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어 냈다. 그는 대학가요제 출신의 '익스'가 출연했을 당시, 어차피 노래가 '안녕하세요' 한 곡밖에 없다면서 똑같은 노래를 여러 번 방송했다. 라디오에서 똑같은 노래를 반복해 방송한다는 것, 기존의 라디오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고스트 스테이션은 SBS에서 방송이 중단되자 인터넷으로만 방송되다가 다시 MBC에서 방송되었고, 다시 중단됐다. 이후 SBS, MBC를 거치며 방송됐다. 고스트 스테이션은 하나의 브랜드였고, 그 브랜드가 여러 방송국을 이동하며 방송할 수 있다는 기막힌 사례를 만들어냈다. 고스트 스테이션은 가장 자유로운 라디오였고, 가장 그다운 방송이었다.


신해철은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다양한 청자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나누고 위로했다.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는 다른 이들에게는 물어보기 힘든 다양한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 번은 낙태를 여러 번 반복했던 여성의 사연이 나온 적이 있다. 그 시절, 낙태를 여러 번 경험했던 그 여자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고, 놀라운 것이었지만, 고스트 스테이션은 그런 곳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드러낼 수 있는 곳, 그렇게 위로받고 이야기 들을 수 있는 곳. 그녀에게는 분명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 시절, 다른 사람들이 그저 손가락질하고 말았을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반성을 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했다. 그 시기가 만들어낸 사유의 넓이와 자유로움은 그가 우리에게 전달한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에게 신해철에 대해서 말해 보라 하면, 나는 소년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의미이기보다는 겁이 많아지고, 눈을 감고 입을 다무는 것을 잘한다는 의미가 된 지 오래다. 세상에 순응하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나가는 것이 어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신해철은 그런 어른의 삶이 아니라 끝까지 소년의 삶을 살았다. 그는 뜨거웠고, 뜨거운 만큼 행동했고 말했다. 그는 미워했고, 증오했으며, 사랑했고, 아파했다. 그리고 동시에 사유했다. 어쩌면, 그를 칭하는 마왕이라는 호칭은 그가 여전히 소년 같았기에 더욱 잘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둘 것 같다. 그가 보여준 순수함은 그 자체로 너무나 빛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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