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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소격동, 그가 추억하고 있는 것과 기억하고 있는 것

by 박평 2014. 10. 10.




서태지가 세상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던져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교실 이데아>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비판했고, <시대유감>을 통해서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가 사라졌음을 외쳤다. <인터넷 전쟁>을 통해 인터넷의 폐해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런 서태지의 모습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과거를 추억한 이 노래를 통해서 현시대를 강하게 비판해주기를 바라고 기대했던 것은.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는 단지 과거를 추억할 뿐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 그가 살던 동네, 그리고 그가 기억하던 순수했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소격동'이라는 노래 안에 가득 차 있다.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 소리 예쁜 이 마을에 살 거에요.'와 같은 가사를 통해 그는 그 시절의 아름다운 시기를 추억한다. 


하지만 그에겐 단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시절의 기억이 함께 있다. 추억이라고 부르기에 쉽지 않은 그 기억들. 소격동은 그 기억들까지 담담하게 떠올린다. '그 많던 냇물이 말라갔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는 그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들이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기억은 담담하다. 아이유가 기억 부분에서 보컬 톤이 어두워지는 것, 서태지가 보컬의 힘을 빼는 것은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시절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재현된다. 흰색 핼멧을 쓰고 뛰던 백골단, 그리고 소녀의 아버지를 끌고 가려는 권총 찬 초록 옷의 군인으로 보이는 존재는 위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소년의 순수는 백골단과 함께 소녀의 순수는 군인과 함께 점차 사라져간다. 그것이 그 시절 소격동의 기억이다.


서태지는 노래를 통해 그 시절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도, 지금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단지, 그 시절 그랬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 시절에는 백골단이 뛰어다니고 군인이 국민을 탄압했다. 어린 소년과 소녀에게 그것은 폭력이고, 순수함을 잃게 한 세상을 비정상으로 뒤집어 버린 일이었지만, 결국 하나의 기억일 뿐이다. 그 폭력과 비정상을 소년과 소녀가 이해할 수 없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중간에 등화관제가 시작될 때, 서태지가 고개를 돌렸을 때의 장면이 계속 생각나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컷이 튄다. 서태지의 고개를 반대로 돌려져 있고, 그는 다시 정면을 쳐다본다. 현재에서 과거를 보던 그가 다시 과거에서 현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뮤직비디오의 끝에 다 자란 그는 다시 소격동을 찾는다. 그의 얼굴에 미소는 없다. 그리고는 학을 펼친다. 등화관제에 대해 쓰여 있던 종이로 만들어진 그 학을. 그가 다시 찾은 소격동에서 그는 추억하는 것일까? 기억하는 것인가? 그는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그 시절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 한 장 남지 않았음에도 그가 그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제자리에 남아 있던 학은 그의 기억이 단순한 과거의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의심하게 한다. 결국, 지금의 소격동에 남아 있는 것은 순수가 아닌 그가 기억했던 '폭력과 비정상'이지 않을까?


뒤의 사족을 무시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가 그 시절의 순수와 그 순수의 상실을 노래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서태지는 그렇게 과거를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가 꽤 따뜻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매우 불편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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