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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이 건네 준 시원한 카타르시스

by 박평 2014. 2. 14.




'Wha-byung'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말로는 화병이다. 한국 사람들에게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병이다. 한국 특유의 지역 병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쨌든 재벌처럼 영어로는 화병이라고 고유명사화되어 있다. 이 병은 쉽게 말하면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생기는 병인데,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매우 친숙한 병이다.


대한민국처럼 엄격한 잣대를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나이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성별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처지에 따라 해야 할 일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손가락질한다. 아마 최근에도 이미 많은 분이 겪었을 것이다. 명절에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쉽게 떠들었던 말들이 다 그런 것들이니까.


'이제 (나이가 그 정도 먹었으니 정신 차리고 사회의 기준에 어긋나지 않게) 빨리 결혼해야지.'

'고3이면 이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곳에 취업해야 인생 제대로 사는 것이니)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

'대학 졸업하면 빨리 취업해야지 (어디 개념 없게 배낭여행이나 갈 생각을 하고 앉아 있니?).'


정해진 기준과 정해진 틀, 그리고 이 틀 안에서 사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보편적 인식은 어쩌면 우리에게 '화병'을 안겨주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왕국> 에서 엘사가 'Let it go'를 외칠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바로 이런 답답함의 해방이었다. 좋은 아이가 되어야 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콤플렉스, 이를 위해 나를 감추고 정해진 틀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엘사에게 투영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경험이 아니다. 엘사 또한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좋은 딸이 되기 위해 방안에 그녀를 감추고 살아간다. 밖에서 같이 놓자고 노크를 해도 옳지 않은 일이라는 판단에 더욱 자신을 가둬야 하는 모습은 하루하루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내 주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엘사가 결국 자신의 성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엘사의 아픔과 슬픔, 혼자된 외로움에 공감할 준비를 했을 것이다. 'Let it go' 시퀸스의 시작은 그래서 우울하고, 슬프다. 그러나 갑자기 그런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듯이 엘사의 목소리에는 점차 힘이 들어가고, 동작은 커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외롭지만, 자유를 찾는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방 안에서 나올 때의 희열은 그것이 설령 외로운 길이라도 그 외로움을 모두 상쇄할 수 있음을 천명한다. 그녀는 마침내 당당해진다. 그녀가 힐을 신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당당히 걸어 나올 때, 엘사는 진정한 엘사가 된다. 사람들은 외로움에 슬퍼할 줄 알았던 엘사의 당당함에 특별한 해방감을 느낀다.


이 해방감은 화병을 지니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속이 뻥 뚫리는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장면에서 울컥했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방에서 나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엘사는 '틀에 박혀 사는 것'보다는 '외로워도 틀에서 나와 자기답게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인정하고 자아를 확립하는 것이다.


<겨울왕국>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아를 찾은 엘사는 동생의 심장에 얼음을 박는다. 하지만 동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사를 사랑하고, 결국 엘사는 사랑을 깨닫고 겨울은 끝난다. 안나는 이미 수백 번 엘사의 방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둘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엘사가 문을 열고 나와 자기를 찾고 나자, 그 둘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는 상대의 심장에 얼음을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즉, 진정한 사랑이란 우선 내가 나 자신을 찾아내야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설령 내가 상대를 아프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아줄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철학적 사유가 작품 전반에 녹아있다. 


<겨울왕국>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작품이 전해주는 카타르시스는 각별하다. 자신을 둘러싼 틀을 깨고 나와 자기를 발견하고, 상처를 주더라도 자기의 모습으로 사랑해야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이 단순한 진리는 상처받아 방 안에 자신을 가두고 사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겨울왕국>은 이렇게 말하며 노크하고 있다. 어서 문을 열고 나오라고. 거기에 진정한 자신이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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