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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오싹한 연애, 관계의 두려움을 드러내다.

by 박평 2011. 12. 8.



12월 초반의 극장가에 '오싹한 연애'의 흥행세가 심상치 않다. 당초 압도적 1위로 예상되었던 '브레이킹 던'과 거의 차이없는 스코어를 올리며 이후에는 입소문을 타고 아예 '브레이킹 던'을 넘어서서 1위를 질주 할 것으로 보인다.


'오싹한 연애'는 '달콤살벌한 연인'의 연장선이라 보일 수 있는 약간 '기괴한 로맨틱 코미디'이다. 여주인공이 귀신을 본다는 설정 덕분에 이 영화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이면서도 아주 큰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마술사이다. 역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설정 자체 만으로도 이 영화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며 관객에게 충분한 재미를 안겨준다. 게다가 손예진, 이민기라는 역대 최강의 '귀요미'커플의 모습을 보는 것도 정말 쏠쏠한 재미다. 이런 이유로 '오싹한 연애'는 확실히 볼만한 로맨틱 코미디이다.

(- 여기서 부터는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오싹한 연애를 단순히 재밌는 로맨틱 코미디로 보기에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 아까운 면이 있다. 감독이 이 메시지를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이 메시지는 현대 사회에 우리가 안고 있는 '관계'의 공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손예진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귀신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이는 귀신이 자기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즉, 자신으로 인해 남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손예진이 자신이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을 것이고 도움을 요청했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상처를 받고 그리고 상처를 받은 상대는 다시 손예진에게 비난을 퍼 부었을 것이다. '너 때문에 내가 상처 받았다'고.그래서 손예진이 이민기와 연애를 시작할 때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고 얘기 한 것이다.

손예진은 관계에 있어서 남을 상처입히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상처를 받았고 그것이 고의가 아닐지언정 손예진에게 자신이 받은 상처의 모든 화살을 돌렸다.

사실 귀신만 아닐 뿐, 우리 모두는 단점을 지니고 있고 이를 통해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고의적이지 않은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상대는 상처를 입고 나를 비난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관계를 두려워 하게 되었으며, 다들 외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런 외로움을 적절한 거리가 있는 교류를 통해 채우려 하고 있다. 트위터와 같은 매체가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사실 가짜다. 손예진이 '트위터 팔로워'를 외치는 장면과 행복하다고 미소짓는 모습은 이내 곧 너무 힘들다는 울음으로 변해 버린다.

여기서 감독은 참 멋진 설정을 하는데, 손예진의 친구 중에서 시나리오 작가는 언제나 굉장히 럭셔리한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하는 식으로 표현이 되다가 손예진이 외롭다고 울때 마침내 욕조 밖에 앉아서 전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녀 뒤에는 매우 낡은 타일이 비쳐진다. 그녀는 매우 잘살고 있는 것처럼 포장되지만 하지만 그것은 다 허황된 이미지였던 것이다. 즉, 우리는 거리가 있는 교류를 통해 자신이 외롭지 않고 잘 살고 있다고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손예진은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을 더 아껴주는 이민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진정한 관계를 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설정은 안타깝다. 그런 이상적인 상대가 나타날 가능성은 드물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파도 남의 아픔에 더욱 관심을 갖고 가여워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이 관계의 단절과 괴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이상적인'상대를 만나는 사실이라는 것은 지금과 같이 '단절된' 외로움의 시대를 헤쳐나갈 방법이 없다는 끔찍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어쩌면 감독은 '그러니 제발 니 아픔보다 남의 아픔에 더 공감해 달라고'요구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감독은 손예진이 보는 귀신을 사랑이 이루어진 후에도 등장시키는 강수를 둔다. 그 귀신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로서는 깔끔하지 않은 해결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라는 것은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랑을 해도, 관계를 맺어도 우리는 여전히 상대를 아프게 할 수 밖에 없다. 단지 그 아픔을 받아 들여줄 사람을 만나야 할 뿐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관계에 대한 일관성있는 통찰은 사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더욱 깊이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사랑얘기가 예뻐서, 귀신이 긴장감을 불어넣어 줘서가 아니라, 이 안에서 관계를 힘들어하는 그리고 세상과 단절되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관객이 인지하지 못하여도 관객 속으로 스며든다. 사실 이 영화의 진짜 힘은 여기에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 특별한 설정을 넣는 것은 요즘 대한민국 로멘틱 코미디의 유행이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이 작품은 분명히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 영화를 본다면 혹은 복기해 본다면, 아마 이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아픔보다 상대의 아픔에 더욱 관심을 갖고 안아 줄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 보듯이 귀신이 나타나도 사랑하는게 더 좋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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