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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나는가수다] 가수 김건모를 죽이다.

by 박평 2011. 3. 21.

'나는 가수다'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김건모가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도전 기회를 준것에 대한 비난이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실제 이러한 비난은 조금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처음부터 '나는 가수다'는 좋은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취지였고, 시청자들은 2주동안 그 취지에 동감하면서 오히려 노래 중간에 들어간 편집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서바이벌 제도를 없애고 온전히 가수들의 노래만 듣게 해달라는 요청을 꽤 많이했다. 그러나 방송 3주째, 김건모가 떨어지고 부활하며 이런 상황은 반전되었다.


- 왜 시청자들은 비난하는가?

이유는 뻔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사랑받았던 이유는 오롯이 실력만을 가지고 겨루는 것이라는 데 있었다. '나는 가수다'는 실력을 겨룰 수 없는 가수들을 모아놨기 때문에, 오직 청중들의 현장 투표로 그날의 공연만을 평가하게 된다. '나는 가수다'에서의 탈락은 가수의 실력이 아닌 그날의 무대의 호응도와 연결될 뿐이었다. 이렇게 따지면 김건모가 탈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당연함에서의 부활이 '김건모'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그는 최고의 선배이기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온전히 실력을 겨루고, '나는 가수다'가 온전히 무대를 겨루는 거라면, 그 외의 것들이 평가에 관여되면 안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된 평가는 존중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건모가 떨어지고, 부활하면서 이미 결정된 평가는 번복되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용납 가능한 선이다. '김건모'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만약 정엽이 떨어지고 부활했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비난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막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건모'는 다르다. 가장 최고의 선배이다. 20년차 대가수이다. 그가 부활한 것은 마치 '동정'도 아니고 후배들의 '요청'도 아닌, 우리 사회에 심어져 있는 뿌리깊은 권력 숭배의 오마주처럼 보인다. 가장 강한 자로서의 권력. 시청자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정성에서 이런 부조리한 세상의 탈출을 꿈꾸는 것이다.

학연, 지연, 혈연과 라인으로 이뤄지는 연공서열의 구조에 신물을 느낀 사람들이 '오디션'프로그램의 아무런 차별없는 공정한 대결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김건모의 부활은 그런 시청자들을 다시 현실의 부조리한 늪으로 빠트렸다. 그것도 청중평가단의 결과를 아주 쉬운 '방식'으로 우회하면서.

이것이 시청자가 분노한 이유이고, 이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김건모는 죽었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는 김건모의 부활이 반갑다. 20살때, 한 와인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그가 즉석에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던 것을 들은 경험이 있다. 그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 일한돈 받지 않아도, 아니 이번달 월급 받지 않아도 되겠다.'

그의 노래를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알다시피 김건모는 일부러 가벼워 지려 하는 사람이다. 지독하게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 나는 그 이유가 평상시의 진지한 모습에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을 때, 음악할때의 고독과 진지함이 그 외의 장소에서 가벼움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도 똑같이 '가벼우려' 노력했다.


내가 이 프로그램 처음 시작할때,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가장 궁금한건 김건모가 언제 본 모습을 보일지야. 지금은 장난 처럼 하겠지만 분명 나중에 제대로 보여주겠지.'

그런데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전에 탈락 해버렸으니 솔직히 나도 놀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쨌든 결과고 이대로 정리하는 것이 그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장난식으로 한 거 김건모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테니까.

그런데 그가 부활을 택했다. 그로서는 최악의 수를 놓은 것이다. 이것을 알고 했는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결정이긴 하다.

김건모의 부활이 반감을 산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1~2주차에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 공연을 했다는 데에 있다. 물론 그의 노래는 훌륭하다. 그러나 다들 아주 무거운 무게를 감당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할 때, 그는 최대한 가벼워 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가벼움은 무대위에서의 편안함이 아니라, 무대 자체를 덜 진지하게 여기는 모습으로 비춰진게 사실이다. 누구는 여유라 하겠지만 누구에게는 그저 가벼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김건모가 너무나 겁이 많은 가수이며, 아주 엄청나게 자신의 실력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가수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그가 진지하게 못하는 이유가 두려워서는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그런 그가 오직 '연배', '나이', '계급'빨로 살아났으니, 김범수씨가 말한 것처럼 엄청난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건 모두가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에게는 무대로서 그 모든 나쁜 반응을 막아야만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과연 그게 쉬울 것인가? 이미 수많은 비난의 뭇매를 맞는 상황에서?

게다가 만약 그가 또 한번 탈락한다면 어떨까? 그로서는 무대가 아닌 실력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할 만큼의 악수인 것이다. 그런점에서 김건모의 선택은 어쨌거나 무조건 악수이다. 그가 그저 물러났다면 그의 권위는 더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죽어야 산다였다. 그러나 그는 살았으므로 이젠 죽을 가능성이 더 많아 졌다. 그는 모든 논란을 노래로 잠재워야 한다. 


- 이번이 마지막이고, 더이상은 안된다.

나에게 이소라의 노래를 듣게 해줘서, 백지영의 진짜를 보여줘서, 황금시간대에 윤도현의 락을 내보내줘서, 그리고 그 작디 작은 박정현의 소름끼치는 성량과 기교, 천재의 보컬이 어떤 건지를 몸소 가르치는 김범수 까지 만날 수 있게 해줘서 나는 그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에 감사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나 이소라랑 백지영의 보컬을 너무나 사랑한다. 이소라의 진짜와 백지영의 진짜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래서 온갖 잡음에도 온갖 비난에도 난 이 프로그램이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안정화 시킬 때가 되었다. 첫 녹화후에 벌써 2주가 지났고, 이번 반응을 확인하면 어떻게 편집을 하고 어떻게 구성을 해야할지 어느정도는 다 피드백이 되었다고 보인다. 그러니 이제 더이상은 이런 큰 비난 여론을 만드는 제작상의 오류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솔직히 오늘 여론을 보고 방송 보기 싫었다. 가수들의 무대에서 그저 감동만 받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이 방송을 본 이유는 딱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래에 목 마르다는 것. 그래서 이번까지만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작진은 더이상 나는 가수다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정도는 안정을 시켜놓아야 시청자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미 가수 김건모는 죽었다. 그러나 그의 라이브를 들어본 사람으로서 그가 정말 진지하게 하는 노래를 들어 보고 싶다. 자신의 감정을 막지 말고, 정말 어두워도 상관없으니까, 진짜 노래 말이다. 만약 그런게 없다면, 그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이 전부라면 머지않아 그는 다시 탈락할 것이다. 청중심사단은 냉정하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그가 다시 부활할지 아니면 이대로 끝날지는 오롯이 그의 태도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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